[촌부의 단상]
산골 사는 맛이 이런겨!
2024년 11월 19일 화요일
甲辰年 음력 시월 열아흐렛날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난롯불부터 지폈다.
아직 여명이 밝아오려면 최소한 한 시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바람이 없어 그리
춥다는 느낌은 없으나 어제와 비슷한 기온,
영하 7도이다. 서녘 하늘엔 아직 넘어가지
못한 열여드렛날의 달이 빛을 발하고 있다.
달빛에 가려 희미한 별들도 주변을 맴도는
듯하다. 어젯밤에만 해도 총총했었는데...
지붕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서리가 달빛에
반짝인다. 멋진 정경인데 스마트폰이라서
찍은 사진이 시원찮다. 내마음에 간직하는
수밖에 없다. 이럴땐 카메라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내에게 사달라고
하면 사주려나?
아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와서 혼자 집에
있으려니 많이 무료했다. 울산 다녀오느라
꼬박 이틀 즐겁게 지냈으니 뭔가 일거리를
찾아야 하고 하자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문득 꽃대를 자르며 잎파리가 예뻐 남겨둔
삼지구엽초가 생각났다. 조금 더 남겨두고
싶었지만 이제는 때가 되었다. 그냥 둔다는
것은 고문을 하는 짓이라 여겨진다. 된서리,
찬바람, 영하의 추위에 주인을 욕할 것 같아
전지가위를 들고 꽃대를 잘라주었다. 이제는
더 이상 자를 꽃대는 없다. 내년 봄날까지는
삭막한, 훵한 모습을 보며 기다려야만 한다.
심봤다~!!!
무슨 소리냐고? 삼지구엽초 꽃대를 자르고
나서 얼마전 마른 더덕덩굴을 걷으며 앞마당
축대 부근의 더덕을 캐야겠구나 했었다. 허나
한동안 잊고있었다. 삼지구엽초 앞쪽이라서
이제서야 생각이 난 것이다. 집주변의 더덕은
우리가 심은 적이 없는 자연 그대로 자라나고
있는 것이라서 완전 자연산 더덕이다. 덩굴을
걷어내며 표시해 놓았다. 손괭이를 들고나가
살금살금, 조심조심, 주변의 흙을 긁어냈다.
뇌두가 조금 드러났다. 상당히 굵은 녀석이다.
못해도 십수년은 묵은 듯하다. 행여나 다칠까
아주 조금씩 흙을 파고 긁어내기를 얼마쯤을
했을까? 꽤나 깊이 팠다. 다행히 돌틈 사이가
넓어 제대로 자란 듯했다. 끝부분에 돌이라서
더 깊이 자라지는 못하고 옆으로 자란 듯했다.
드디어 맨아래 뿌리까지 흠집없이 캘 수 있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멀리 산에 가지않아도
이렇게 집에서 더덕을 캘 수 있음이라 이런게
산골살이를 하는 재미구나 싶다.
캐놓은 더덕을 본 아내도 놀라면서 좋아했다.
더덕구이를 해먹자고 했다. 꽤 큼지막한 더덕
한 뿌리가 한 접시 분량이라서 우리 둘이 실컷
먹었다. 더덕 내음이 온집안에 진동하고 우리
입안에서 춤추는 듯했다. 여기저기, 군데군데
이런 더덕이 많이 자라고 있지만 이제 추워져
땅이 얼게 되면 내년 봄에나 캘 수 있으니 더
얼어붙기전에 캘 수 있는 것은 캐서 몸보신을
해야겠다. 맛있게 먹는 아내 모습에서 보람을
느꼈다고 할까? 산골살이의 맛이 이런 것이다.
사실 어제는 컨디션이 엉망이었다. 한 열흘전
상한 듯한 앙버터빵을 먹고 배탈이 났고 거의
장청소를 하는 듯한 고통을 겪었다. 집에 있는
약을 먹으면 낫겠지 했다. 괜찮은 듯하여 멀리
울산까지 360km를 달려가 친구 아들 결혼을
축하했다. 경향 각지에서 모인 친구들과 함께
먹고 마시기를 실컷 했다. 그리고 제천 친구의
부부와 함께 울산 관광도 잘하고 집으로 왔다.
이틀간 720km의 운전, 하루저녁의 과음으로
또다시 재발한 배탈,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보건진료소에 가서 검진하고 약을 타갖고 왔다.
이제 무리해서는 안되는 나이란다. 음식 또한
이상하다 싶으면 먹지말란다. 이제 체력과시는
절대 금물이라며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오라고 했다. 지어온 약을 먹고 속은 편해졌다.
그런데 온몸이 으스스하고 뼈마디가 욱신욱신
쑤시는 듯했다. 몸살 기운이라며 아내가 급히
생강계피茶를 준비해줬다. 겨울철에는 수시로
끓여주는 건강차다. 생강과 계피를 팔팔 끓여
대추, 꽃감, 밤, 잣을 넣어 아주 뜨끈뜨끈하게
먹고 마시는 산골아낙표 茶라고 할까? 아내의
정성과 배려 덕분인지 오늘 아침은 거뜬하다.
오늘 하루는 아무일도 하지않고 쉬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