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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산골부부의 김장하던 날 

 

2024년 11월 3일 일요일 

甲辰年 음력 시월 초사흗날 

 

어제 아침과는 사뭇 다른 오늘 아침이다. 

기온은 뚝 떨어져서 영상 5도에 머무르지만 

춥다는 느낌은 전혀없다. 요즘 아이들이 하는 

말처럼 쌀쌀함은 1도 없다. 안개가 자욱하다. 

땅바닥이 축축하게 젖은 걸 보니 한새벽에는 

이슬이 내린 것인지 아님 안개비 때문에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따스한 가을도 

내일 비소식 이후에는 영하로 떨어져 추울 것 

같다는 예보다. 하긴 여느해 가을보다는 한결 

따스했으니 이제 추워질 때도 되었다. 아무튼 

이제 추위가 와도 눈을 치워야만 하는 부담외 

별 걱정은 없다. 겨울채비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 옛날, 1960년대 말경 섬머슴아가 서울에 

유학을 갔던 그 시절 어머님께서 하셨던 말, 

"겨울 오기전 쌀 한 가마니 팔아놓고(사놓고) 

 연탄 200장 들여놓고 김장 한 접(100포기) 

 해놓았응께 아무 걱정 없다아이가!" 그 당시 

어렸던 촌부는 그 말의 의미엔 관심이 없었고 

무심코 흘려 들었다. 나이가 들어 알긴 했지만 

오늘따라 어머님 그 말씀의 뜻이 새삼스럽게 

생각이 난다. 어머님 말씀을 지금 현실에 맞게 

되풀이를 해본다면 이렇게 되는 것이겠지? 

"긴 산골의 겨울이 닥치기 전에 영주에서 아주 

 맛좋은 쌀 40kg 사다놨고 보일러 기름 가득 

 채워놓고 난롯불 지필 장작도 장작집에 한가득 

 쌓아놓았으며 김장 김치도 뚝딱 해치웠으니까 

 제아무리 긴 겨울이 온다고 해도 끄떡없다니!" 

 

어제 산골부부는 겨울채비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는 김장을 했다. 이곳 산골은 입동전에 

김장을 하는 풍습이 있는 고장이다. 워낙 추운 

고장이라 일찌감치 김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올해는 여느해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해치웠다. 

배추를 심지않았고 난생처음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한 것이다. 이제는 아내의 고생을 조금 

줄여주고 싶었다. 통배추를 손질하고 절이느라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또 절인 배추를 씻느라 

무척 고생하는 그 과정을 줄여주게 된 것이라 

너무나 마음이 편하다. 아내도 무척 좋아했다. 

이제 예전의 촌부가 아니다. 변화에 따라가는 

그런 일상을 누리고 싶은 것이다. 

 

올해도 마을에서 배추를 사다가 김장을 하려고 

했다. 우연히 함께 일하는 형님 친구분이 인근 

마을에서 절임배추 사업을 한다기에 알게 되어 

그 집에서 절임배추를 살 수 있었다. 직접 가서 

사왔는데 깨끗한 시설이라 마음에 쏘옥 들었다. 

절임배추는 잠시잠깐 물기를 빼면 되고 곧바로 

김치속을 넣어도 되어 아주 수월하고 편리했다. 

그동안 처제들이 절임배추를 사서 김장을 하는 

것이 보수적인 고집불통 남편 때문에 말못하고 

많이 부러워했던 아내, 이제서야 힘든 김장의  

굴레, 김장의 부담에서 벗어난 듯하다며 미소를 

짓는 아내, 그런 모습에 많이 미안했다. 오히려 

고맙다는 말까지 하는 바람에 뭐라 할말이 없어 

더 미안했다. 그런 말까지 하는 아내가 고맙다. 

 

이렇게 산골부부는 김장을 해치워 겨울채비를 

마쳤다. 이래저래 고생한 아내에게 보답을 할까 

싶어 저녁은 나가 외식을 하자고 했더니 너무 

좋아라 했다. 둘째네도 김장하느라 수고했으니 

함께 나가자고 했다. 마침 인근 리조트 부근에 

중국음식점이 새로 생겼다기에 모처럼 청요리 

먹으면 어쩌냐 했더니 식구들이 모두 좋아했다. 

탕수육, 양장피, 해물쟁반짜장, 소주도 곁들여 

맛있게 먹고 들어왔다. 모처럼의 산골식구들 

회식이었다. 사는 거 뭐 별 것 있겠는가? 이젠 

먹고싶은 것 먹으면서 힘든 일보다는 조금은 

느리더라도 천천히 수월하고 편하게 사는 것이 

노년을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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