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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꽃대 정리와 아내의 한지미술 작품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甲辰年 음력 시월 초닷샛날 

 

매스컴에서 오늘부터는 기온이 급강하 하고 

많이 추울 것이라면서 떠들어대곤 했었지만 

실제로는 뭐 그리 많이 추운 것 같지는 않다. 

이른 아침 기온은 영상 3도에 머물고 바람은 

없으나 지붕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일기예보에서 말한 추위는 내일부터 그럴 것 

같다. 그렇긴 해도 거실은 약간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것 같아 아내가 기상하기전 난롯불을 

지펴놓았다. 이제부터는 거의 매일 하루의 첫 

일과는 난롯불 지피기가 되지않을까 싶다. 

 

모레가 절기상 겨울이 시작된다는 입동(立冬) 

이긴 하지만 아직은 가을이 머무는 산골이다. 

단지 곳곳의 단풍나무는 예쁘게 물들어 있다. 

머잖아 그 예쁜 잎파리도 떨어지고 말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너무나 보기가 좋다. 낙엽송과 

함께 올가을 마지막 단풍이 될 것이다. 그런데 

철잃은 백일홍 두 송이가 보인다. 어쩌다 이제 

피었을까? 이 녀석들은 씨앗도 맺지를 못하고 

사그라지고 말겠지 하는 생각, 조금 애처롭게 

보여 가만히 어루만져 주었다. 주인장 영감의 

이런 사랑이라도 받고 가라면서...  

 

이제 겨울채비는 모두 다 끝나 그다지 할 일이 

없다. 텅빈 밭가를 거닐다보니 너무 허전하고 

어째 많이 쓸쓸한 느낌이 든다. 그동안 수많은 

농작물을 아낌없이 내어주었던 고마운 밭이라 

긴 겨울동안의 쉼을 위해 밭설거지를 해줬다. 

땅을 아끼면서 흙을 사랑하는 것이 농부로서 

최소한의 예의라고 여기는 촌부이지만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밭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별 것 

아닌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히곤 한다. 바닷가 

섬놈 출신이 도시에서 성장을 하여 살아오다가 

어쩌다 이 산골에 들어와 농사짓는 흉내를 내고 

있을까? 이 땅, 이 흙과 함께할 나의 운명인가? 

그래도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농사지어 

자급자족을 하고 나눔도 하고 있으니 이만하면 

농부로서 자질과 소양을 갖췄고 마음가짐 또한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겠지? 

 

어제 늦은 오후, 이제는 더 이상 남겨두는 것은 

아니겠다 싶어 앞뜨락 꽃대 정리를 했다. 낫과 

전지가위를 들고 나섰다. 우선 유인줄을 끊어낸 

다음 지지대를 뽑아냈다. 봄날에 지지대를 박고 

유인줄을 칠 땐 몰랐는데 정리를 하려니까 아주 

번거롭고 성가시다. 그런 다음 낫과 전지가위로 

물기가 다 빠져 바짝 마른 꽃대와 넝쿨을 모두 

잘라냈다. 새싹이 돋는 봄날, 파릇파릇한 잎과 

줄기를 과시하던 여름날, 점점 생기를 잃어가는 

가을날, 그러나 지금껏 철마다 예쁜꽃을 피워 

눈과 코 그리고 마음의 호사를 누리게 해줬던 

야생초와 화초들이었기에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내년 봄 다시 만나자고 약속을 하며 정리했다. 

단 하나 잎파리가 예쁜 삼지구엽초는 남겨뒀다. 

한동안 너저분한 모습이었는데 아주 깔끔하게 

겨울을 맞이하게 되어 바라보는 촌부의 마음도 

너무나 개운하고 좋다.  

 

어젯밤 아내가 학교에 일을 다녀와 힘들었는지 

초저녁부터 잠들었다. 며칠전 주문한 냉동고를 

오늘 배달한다고 하여 저녁식사후 놓을 자리를 

정리했다. 그런데 냉장고 뒷쪽에 아내의 작품이 

하나 냉장고에 가려진 채로 걸려있는 것이 보여 

영 마음에 걸렸다. 110×90짜리 대형 액자라서 

혼자 들어내는 것이 조금 힘들 정도다. 그렇다고 

자는 아내를 깨우기는 그렇고 하여 의자를 놓고 

혼자 해보기로 했다. 어찌어찌 하여 떠어내기는 

했으나 다른 장소에 옮겨 다시 걸어보려고 하니 

혼자서는 안될 것 같았다. 젊은 날엔 이 정도는 

일도 아니었는데... 하는 수가 없어 자는 아내를 

불러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자리를 잡아 걸었다. 

아내에게 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일을 많이 줄였고 한동안 숨겨졌던 당신 작품을 

제대로 자리잡게 해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했다. 

 

아내는 도시에 살던 때 한지미술을 오래 배웠고 

강사자격증까지 취득하여 주부교실에서 강사로 

왕성하게 활동을 했었다. 이곳의 산골에 오면서 

손을 놓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땐 전원주택 

지으면 아내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인 갤러리를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나 정작 짓고보니 

그럴만한 공간이 없어 약속이행을 못했다. 대신 

집안 곳곳의 벽에다 아내의 작품을 걸어놓았다. 

또한 창고에서 잠을 자던 작품을 많은 분들께 

선물로 나눔을 하기도 했다. 아까운 재능인데 

손을 놓아 많이 아쉽기는 하다. 그래도 지난날 

열심히 작품활동을 했던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좋은 추억으로만 생각한다는 아내, 전원생활을 

한답시고 제대로 된 갤러리 마련과 작품활동을  

못하게 한 것 같아 많이 미안하다. 이제라도 좀 

해보면 안되겠냐고 했으나 손이 굳었고 감이 

떨어져 못하겠다고 한다. 이 모두 전원생활에 

사활을 걸었던 촌부의 고집, 촌부의 탓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숨어있던 아내의 작품을 

잘 보이는 곳으로 옮겨 걸어놓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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