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9일 동안 뭘하지?
3월 8일, 음력 庚子年 이월 열나흗날
오늘부터 9일, 아흐레, 아홉 날을 쉬어야만 한다.
시절이 좋아서 쉬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게 아니고 비상시국이라 어쩔 수 없이 쉬는 휴가,
돈도 못받고 월급에서 쉬는 만큼 돈이 깎이는 휴가,
반강제성 휴가 소위 말하는 '무급휴가'라는 것이다.
한창 시절 28년을 근무했던 해태그룹 시절은 물론
나라 재정이 거덜나서 줄줄이 부도가 나던 IMF에도
이런 일은 없었고 '무급휴가'를 생각도 못해봤는데
이놈의 중국 우한發 신종 바이러스 코로나19 때문에
이 나이에 별의별 휴가를 다 경험하게 되는구나 싶다.
지난 2월 마지막날인 29일에 전직원을 불러놓고서
코로나19 사태로 영업실적이 저조하여 어쩔 수 없이
'무급휴가'를 결정했으니 십시일반 동참하는 뜻으로
양해를 바라며 동의서에 서명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책임자의 설명에 어느 누구 하나 대꾸없이 서명했다.
급여의 1/4을 덜 받게 되겠지만 어쩌겠는가? 그래도
광고회사 시절, IMF 외환위기(1997년 12월 3일~
2001년 8월 23일)로 고통을 받았던 것 보다는 훨씬
덜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 IMF시절을 겪을 당시가 문득 생각난다. 관리
책임자로 3년에 걸쳐 어쩔 수 없는 대규모 감원, 바로
구조조정이란 것을 실시했었던 그 기억, 너무나 가슴
아팠던 그 과거가 다시 떠오른 것이다. 당시엔 참으로
답답하고 막막해 가슴이 찢어질 듯 너무 많이 아팠다.
하루 아침에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동료들을 느닷없이
떠나보내야 하는 그때 심정은 당해보고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를 못할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크나큰
고통이고 아픔이고 참담함이었다. 하루하루를 견디는
것은 가시밭길을 걷는 듯한 마음이었다. 결국 1, 2차
구조조정을 하며 눈물로 동료들을 떠나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3차 마지막 구조조정을 실시해야 한다는 상부
지시를 수행하며 마음을 굳혔다. 두 차례에 걸쳐 떠나
보낸 동료들은 물론 또다시 떠나보낼 수밖에 없으니
마음 아픈 것은 고사하고 100여명의 동료들과 또한
그들이 먹여 살려야 하는 딸린 식구들을 평균 셋이라
치면 모두 400여명의 밥줄을 끊어놓는 악역을 맡아
그 일을 하였으니 양심의 가책을 받지않은 수 없었다.
아내와 몇 번을 상의하고 고3이 되어 대입을 앞두고
있는 아들의 의견도 물었다. 아내는 3년 가까이 너무
힘들게 회사에 다니는 것을 지켜봐기에 오히려 그만
두는 것이 잘된 일이라며 오히려 위로를 했으나 아직
세상물정 모르는 아들이 했던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자영업자 아빠보다는 광고회사 국장인 아빠가 훨씬
더 좋다."라며 더 다니면 안되겠냐고 했던 그 말이...
아내의 격려에 힘을 얻어 아들을 설득하여 결국 3차
구조조정을 마무리하며 사직서를 내고 긴 해태그룹
생활을 끝내고 말았다. 회사에 불미스런 사건이 있어
1년뒤 다시 복귀하여 3년을 더 근무하긴 했지만 그때
심정은 이루말할 수가 없었다. 지금도 나름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력서 한번 쓰고 28년의 긴 세월
곁눈질 하지않고 열심히 일했다는 것이 자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바보스럽기도 했다는 생각이 든다.
몇몇 사람들은 지금도 서로 연락이 되지만 그때 아픈
상처를 가지고 떠났던 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떠나며 손을 꼬옥 잡아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한데...
괜시리 그 옛날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지만 지금
이 시기는 그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인데 뜬금없이...
코로나19 사태로 무급휴가란 것을 경험하게 되지만
대구, 경북에서 힘들게 사시는 분들은 물론이고 지금
온국민은 다 같이 너무 힘든 나날이다. 더욱이 방역과
진료를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분들 노고에 비하면
이 정도는 오히려 아무것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다.
부디 이 사태가 하루라도 더 빨리 종식이 되어 평온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함께 수고를 아끼지않는
많은 분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각설하고...
앞으로 9일 동안,
"뭘하지, 뭐하꼬?"
"우찌 지내모 좋겠노?"
"오데 오도가도 몬하는데..."
"디비 자는 것도 하루이틀이제..."
"날이 추버서 바깥일도 못할낀데..."
"아따, 참말로 깝깝한 노릇이다 그쟈?"
"쪼매 생각 해보자, 뭔가 있긴 있을낀데?"
"머리가 썩었는가 당최 번뜩이는 게 없네."
"여보게, 아지매! 뭐 좋은 아이디어 없는교?"
그랬더니 산골 아낙, 순악질여사님 왈,
"이참에 보다가 팽개친 고우영 만화 <십팔사략>이나
마저 다 보시구랴! 아님 다른 책이라도..."
"아하, 마땅한 일이 하나 있긴 있는데..."
"머잖아 봄이 오잖수? 봄맞이 집안 대청소나 합시다!"
"괜시리 입방정을 떨어가지고 그만 꼼짝없이 겨우내
캐캐 묵은 먼지를 양껏 뒤집어 쓰게 생겨버렸네.ㅎ"
무급휴가로 쉬는 첫날,
미적거리다가 한참 뒤늦게 하루를 시작한다.
이렇게 늦게 하루를 여느 것이 얼마만인가?
사방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고
아침 기온은 여전히 영하에 머무르고 있다.
영하 5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