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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IMG_20200304_3.jpg : 촌부의 단상-갑(甲)과 을(乙)IMG_20200304_2.jpg : 촌부의 단상-갑(甲)과 을(乙)IMG_20200304_1.jpg : 촌부의 단상-갑(甲)과 을(乙)[촌부의 단상]
갑(甲)과 을(乙)

3월 4일, 음력 庚子年 이월 열흘날
어제 늦은 밤부터 우리에게는 영원한 '갑'이라 할 수
있는 하늘의 배려가 시작되었다. 비가 내린 것이다.
산골에서 봄이라는 말을 꺼내긴 아직 많이 이르지만
부슬거리며 내리는 것이 마치 봄을 재촉하는 비처럼
느껴졌다. 며칠전처럼  눈이나 진눈깨비가 내렸다면
하늘의 갑질이라고 하겠지만 다행히 날씨가 풀려서
비를 내려주고 있어 갑질 대신 배려라고 표현을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잠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서
바깥에 나가보니, 이런이런 영하 2도의 기온에 제법
거세게 부는 바람과 함께 눈이 펄펄 흩날리고 있었다.
어젯밤에 생각했었던 하늘의 갑질이 시작된 것이다.
하늘을 영원한 '갑'이라고 한다면 자연에 기대어 항상
순응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영원한 '을'이라 해야겠지?

갑(甲)과 을(乙)이란 말을 꺼냈으니 의미를 살펴보자.
갑(甲)은 십간의 첫째이고, 을(乙)은 십간의 둘째를
뜻한다. 그렇다면 또 '십간(十干)'은 무슨 의미인가?
역학(易學)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갑, 을, 병, 정, 
무, 기, 경, 신, 임, 계(甲, 乙, 丙, 丁, 戊, 己, 庚, 辛,
壬,癸)를 십간(十干)이라고 하며, 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子, 丑, 寅, 卯, 辰, 巳, 午,
未, 申, 酉, 戌, 亥)를 12지지(十二地支)라고 한다.
십간은 하늘에 자리한다 하여 천간(天干)이라 하고,
12지지는 땅에 자리한다 하여 지지(地支)라고 한다.
굳이 역학 용어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지만
오늘 하고자 하는 화두인 "갑(甲)과 을(乙)"에 대한
유래가 무엇인가 살펴보다가 보니 생각이 떠올라서
나열해 보았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갑, 을"이다.
대부분 갑(甲)은 모든 것에서 우위를 점하는 뜻으로
사용이 되고, 을(乙)은 그와 반대로 하위가 되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계약을 비롯한 모든 관계에 있어서는
특히 이 두 용어가 반드시 등장을 한다. 계약이라 함은
두 당사자가 관계에 있어 동등한 입장이 되어야 하는
것인데 어디 그런가? 모든 면에서 '갑'의 위주가 되고
'을'은 그저 '갑'의 뜻이나 지시를 받는 종속적 관계에
불과하다고 봐야하는 것이 맞는 현실이다. 계약서를
보면 모든 것이 '갑'에게 유리하고 '을'에게 불리한 게
다반사다. 바꿔 말하면 '갑'은 강자이고, '을'은 약자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놈 촌부는 65년이란 세월을 살아오며
'갑'의 입장에 있었다기 보다는 늘 '을'의 위치였었고
소위 말하는 갑질 한번 못해 보았다. 좋게 보면 아주
다행스런 일이라 하겠지만 또 한편으론 큰소리 한번
못쳐본 것이라서 아쉬운 마음도 없잖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남을 아프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그 갑질이 얼마나 상대방으로 하여금 모욕감을 주는
것인지를 '을'의 입장으로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많이
경험하며 겪어왔기 때문이다. 첫 회사에서는 고객이
왕이라고 하여 늘 굽신거려야 했고, 광고회사에서는
광고주를 칭할때 우리끼리 '주님'이라고 하며 언제나
하늘처럼 떠받드는 신세였다. 또 아직까지 없어지지
않은 수직형 조직에서는 상사의 말 한마디가 엄청난
위력을 가진 명령이었기에 자나깨나 복종을 해야만
했다. 나 역시 어느 위치에 올랐을 때는 직장 후배인
부하직원들에게 갑질하는 선배나 상사로 낙인 찍힌
것은 아닌지도 모른다. 시집살이를 당해 본 며느리가
시집살이를 더 지독하게 시킨다는 말이 있기는 해도
나는 당시에 부하직원을 내 아우처럼 나름 잘 해주며
그들의 과오까지도 내가 책임지는 그런 상사였다고
감히 자부를 한다. 이런 성격 때문에 뒷통수를 아주
호되게 맞아 곤욕을 치르기도 했었지만 후회는 없다.
문득 오늘 그들을 생각하다보니 보고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20년전 전원생활을 한답시고 이 산골에서
펜션을 열고 영업을 시작했다. 이 또한 서비스업이라
'을'의 위치였다. 자식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웃으며
굽신거려야 했다. 그렇게 15년 가까이 지내다보니
많은 회의감에 촌부도 아내도 지쳤다. 아마도 나이가
들다보니 어쩔 수 없는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래서
돈 보다는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여 영업을 접었다.
대신 새로운 일을 찾았다. 여기 또한 서비스업종이고
이 촌부가 경험을 해보지못한 전혀 새로운 일이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새롭게 시작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결코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는 다소 힘이
들지만 마음은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이 또한 '을'의
입장이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 따박따박 급여를 받는
일의 마지막이 될 것이라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이제 얼마후 이 일도 손을 놓아야만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갑'도 '을'도 아닌 삶을 시작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지나온 내 삶을 반추하며 내 일생 일대
꿈이라고 할 수 있는 내 이름 석 자를 세상에 남기는
한 권의 책을 꼭 쓰고 싶다. 또 하나 더, 아내와 함께
다니다가 사정이 있어 못한 남도기행과 해안선 일주
여행을 꼭 실행하고 싶다. '갑'도 '을'도 아닌 자연인
'산골 촌부 이용식'으로 말이다.

코로나19로 수많은 분들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다.
하루빨리 이 사태가 종식되어 평온을 찾으면 좋겠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으로 모진 고생을 하시는 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우리 모두가 이 시기를 잘 이겨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관계자 여러분,
고맙고 감사합니다.^^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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