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세월 참 빠르네!
2020년 10월 31일 음력 庚子年 구월 보름날
"우와~ 세월이 벌써 이렇게 흘렀삤나?"
어젯밤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10월도 다
갔다는 말에 문득 20년前 생각이 나서 한 말이다.
10월 31일,
이 날은 우리 부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날이라고 할
수가 있는 그런 날이다. 만 19년전, 햇수로 20년전인
2001년 10월 31일 우린 결혼 20년만에 오랫동안
마음에 담고 소원하며 그리던 삶, 원대한 희망, 부푼
꿈, 새로운 인생의 시작 그리고 조금은 힘이 들지라도
남다른 삶을 개척하면서 살아보자며 오랜 도시생활을
과감하게 접고 이곳 산골에 삶터를 정하고 내려왔다.
바로 그날이 오늘 10월 31일이다.
그해 10월 31일 이삿짐을 싣고 왔더니 하얗게 눈이
내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양옆은 꽤 많이 쌓여있었다.
불과 두어 시간 거리인데 기후가 이렇게 틀릴까 하며
이삿짐을 날라야 했다. 도시에서 이삿짐을 싣고 함께
온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무슨 이런 곳이 있냐며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바로 그날부터 날씨의 변화,
기후변화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산골살이는 이렇게 시작했다.
2,503평의 넓고 비탈지고 길다랗게 생긴 감자밭에
가정집 세 동, 영업용 펜션 세 동, 카페 한 동의 건물을
짓고 세 자매, 세 동서가 도시의 삶을 정리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세월이 지난 지금은 반듯한 길도 있고
나무도 심고 화초도 있고 그외 모든 시설이 갖춰져서
큰 불편 없지만 처음 오던 날 이후 꿈에 부풀어 오긴
했지만 불편함은 상상 그 이상,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작은 편의시설을 만드는 공사를 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었다. 바로 겨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지구온난화 현상 영향으로 그 옛날처럼 추위가 훨씬
덜하지만 우리가 왔던 그날 이후 매일 영하의 기온에
서리는 말할 것도 없으며 얼음이 얼고 시도때도 없이
눈발이 날리는 날씨가 이어졌다. 마음편히 살아보자
생각하며 선택한 삶은 처음부터 고행의 길로 들어선
느낌이었다. 돌이킬 수도 없는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 세 자매, 세 동서는 꿈에 그리던 생활,
전원의 꿈을 이루었다는 생각에 힘든 줄도 몰랐었다.
우리가 손수 지은 것은 아니지만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집 그것도 숲으로 둘러쌓인 곳에 멋진 전원주택을
지었다는 것이 얼마나 좋고 뿌듯했는지 모른다. 당시
메스컴에는 직장인의 90% 이상이 전원의 꿈을 꾸고
있지만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단 10%로도 안된다고
했다. 우리는 그 10% 안에 드는 사람이 되었으며, 또
남들과는 너무나 색다른 삶, 바로 세 자매. 세 동서가
의기투합을 하여 함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남들 시선을 의식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살다보면
서로의 단점도 보이게 되고 불편함도 당연 있게 마련
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보니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더라는 것이다. 우리 부부만이라면 못했을 것이다.
원래 의가 좋은 세 자매는 웃음속에 살았고, 각자의
소질에 따라 일을 분담하게 된 세 동서도 일을 아주
즐겁고 신나게 했다. 분담도 하였고 모두가 공동으로
하는 일은 함께 나서 열심히 하였다. 부부가 했다면
둘이지만 세 쌍, 여섯의 힘은 상상 그 이상의 힘이고
과히 어디에다 견주어도 화합된 힘은 대단함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집만 7동이 있던 터전에 이듬해 펜션
3동을 늘렸고 장인, 장모님도 합류하여 가정집1동을
더 지었다. 그 사이 단지에 텃밭, 허브 정원, 주차장과
진입로를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다시 그 이듬해에는
카페 아랫쪽의 숲속에다 펜션 3동을 더 건축하였다.
그게 우리의 건축 마지막이다. 그래서 지금은 14동의
건물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정말 열심히 마치
개척자가 된 것처럼 아무것도 없이 훵했던 감자밭을
일구어 오늘의 이 터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루말할
수도 없는 고생을 했다. 지금 그런 생활로 돌아가서
똑같이 할 수 있느냐고 한다면 아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것 같다. 그땐 젊어서 할 수가 있지않았나 싶다.
내 나이 마흔 다섯, 아내 마흔 넷, 둘째네는 촌부보다
네다섯 살 아래, 막내네는 무려 열 살이나 아래였다.
우리 부부야 40대 중반이었지만 아우들은 30대라서
너무 젊은 나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 패기와 열정이
오늘의 이 터전을 만들 수가 있지않았나 싶다. 맞다!
젊음은 모든 면에서 그 실력이나 위력을 발휘했었다.
우리는 힘은 들었지만 정말 우애있고 정답게 즐겁게
산골살이를 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인해 불경기가 이어져
부득이 아우들이 결단을 내렸다. 아직은 젊은 나이라
또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둘째네가 가장
먼저 이곳을 떠나 도시의 삶으로 돌아갔고 불과 몇 년
전에 막내네가 경북 영주로 내려가 사과 과수원 일을
시작하여 지금은 어엿한 농장주가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 부부가 이곳에 살고 있고 아우들은 집이 그대로
있어서 이따금씩 다니러오곤 한다. 마치 별장처럼...
하는 수 없이 펜션 영업은 몇 해 전에 접어야만 했다.
그렇지만 넓은 단지는 관리를 해야한다. 우리 부부의
몫이 되었다. 여섯이 할 땐 그렇게 힘든 줄을 모르고
했었는데 이제 아내와 둘이서 해야하니 솔직히 말해
힘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보기싫을 정도가 아니라면
예전처럼 죽기살기로 일을 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일을 보고 그냥 있을 수 없어 대충대충 하지는 못한다.
일을 즐기면서 한다는 것은 말이 그렇지 쉽지가 않다.
그럴 때마다 아우들 생각이 저절로 나곤 한다. 함께
했었던 그때의 그 추억을 더듬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즐겁게 일했는데 하면서...
이따 저녁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란 가사로 시작하는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
이란 노래를 들으며 아내와 함께 소주나 한잔하면서
예전에 아우들과 함께했었던 좋은 시간들을 추억이나
해봐야겠다.
아~ 참!
어제는 마치 우리 부부의 전원생활 기념일 축하라도
하듯이 귀한 선물이 도착했다. 꽤 오래전 2년 가까이
함께 일했었던 明峰 함현동 님께서 표고버섯을 잔뜩
보내주셨다. 명봉님은 다재다능하신 분이시다. 현재
전북 부안에서 한국몸살음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시며
만능 발 지압기 '조화 통'을 발명하여 발명특허출원을
하신 분이다. 또한 얼마전에 표고버섯을 재배, 생산과
유통을 하는 '산다농원'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는데 이렇게 재배하신 표고버섯을 보내주시니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아내가 걱정했다.
이렇게 좋은 선물을 받아 어떡하냐고... 보내주신 그
고마운 마음 생각하며 잘 먹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