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단상]욕심을 버려야 하는데...
논어(論語)에 정도를 지나침은 오히려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 있다. 지나친 욕심은 오히려 화를
부를 수가 있다는 뜻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큰 욕심보다는 넘치지않는
정도를 지켜야만 한다하는 교훈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 교훈을 잊어버리곤
한다. 너무나 많은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많으면 많을수록 더 좋다는 뜻으로
쓰이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촌부는 욕심을 부리면서 이 말을 쫓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아침에 든다.
왜 갑자기 뜬금없이 과유불급이니 다다익선이니
하는 말이 떠올랐을까? 바로 잣송이를 주우려고
산을 올라다닌 근 한달 가까운 시간동안에 아마
촌부의 머리속에는 욕심으로 가득하였던 같아서
반성을 겸한 생각을 정리해보는 것이다. 정말이지
물질의 많고 적음은 어디 본인의 의지와 마음대로
되겠는가? 살아가려면 물질은 꼭 필요한 것이라
누구나 이왕 취하려면 보다 더 많은 것을 취함이
더 좋다고 하는 말처럼 다다익선이면 더 좋겠지?
그러나 많은 것을 취하다보면 항상 넘치는 것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인지라 과유불급이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잣송이를 줍는 것도 거의 막바지이고 끝물에
가까운 것 같다. 그동안 나름 산에 오르내리느라
고생은 했지만 그보다는 즐겁게 다녔었다. 운동을
핑계삼아 잣송이를 줍는 것에 더 집착을 하였으니
촌부도 어쩔 수가 없는 생활인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산골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선물인데 그
선물을 마다할 사람이 있겠는가? 하지만 촌부가
잣송이를 주워오는 것은 아니 방법은 청설모가 따
놓은 것을 주로 줍고 가끔씩 비바람에 떨어지는
것을 주워왔다. 어쩌면 청설모의 수고를 빌려서
잣송이를 그저 먹기로 슬쩍 해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없잖아 있다.
어쩌겠는가? 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들의
살아가는 방법인 것을... 그래서 촌부는 감사하고
고맙고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다.
그동안 좋은 자연의 선물을 안겨준 숲이 고맙고
손쉽게 잣송이를 줍게 해준 청설모에게 미안함을
전하면서 올가을의 잣송이 줍기를 마무리한다.
가벼운걸 너무 무겁게 느끼면
허리 나간다
감사히 일상을 지나는 게지
과유불급 중용의 알짜말씀
근데 잣 팔면 보내봐
청솔모대신 도토리로 주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