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너무 오래 함께 살았어!
2월 15일, 음력 庚子年 정월 스무이튿날
이른 아침 기온이 어제와 비슷한 영하 3도에 머문다.
그래도 지붕에는 하얗게 서리가 내려앉은 아침이다.
이 정도라면 겨울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봄이 왔다고
하기도 그런 애매모호한 계절의 분류라고 해야겠지?
문득 "그 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말이 생각난다.
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이기도 하고 언제인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지만 영화 제목이었던 것 같기도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39년전 바로 오늘이 참으로
따뜻한 겨울이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
가수 노사연의 " 바램"이라는 노래의 가사 한 소절이다.
이 노래의 노랫말처럼 아내와 촌부는 하루하루 조금씩
조금씩 익어가고 있는 세월이 어느새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다. 그런데 아내가 이렇게 말을 하여 깜짝 놀랬다.
"쌩촌놈, 섬개구리락지하고 너무 오래 함께 살았어!
어느새 39년이라니... 이보셔! 내 청춘 돌려주시오!"
듣고보니 틀린 말은 아니다. 우린 긴 세월을 아등바등,
팔, 다리를 걷어붙이고 정말이지 참 열심히 살아왔다.
그렇게 가정을 꾸리고 살아온 세월이 39년이 되었다.
바로 오늘이 39년전 1981년 2월 15일 오전 11시
서울 관훈동 종로예식장에서 아내와 백년가약을 맺은
날이다. 세월이 흘러 그 예식장은 지금 없어졌다지만
우리는 서울, 인천을 거쳐 이 산골 평창에 살고 있다.
아내와 촌부는 지금으로부터 45년전 1975년 11월
어느날 함께 근무하던 회사의 동료로 만났다. 당시에
해태그룹의 자회사였던 회사가 母社인 해태제과에
흡수 합병 결정이 나서 전직원의 송별식이 있었다.
아내는 서울 양평동 해태제과에 사무실이 있던 판매
담당하던 부서에 근무를 했었고 촌부는 경기도 안양
소재의 금성유업이란 식품회사의 경리부에 근무했다.
입사후 3~4개월 전화로 업무를 했었기에 목소리만
들었을 뿐이고 얼굴을 한번도 보지는 못했다. 그렇게
넉달이 지났었기에 어떻게 생겼는지 무척 궁금했다.
그날의 그 야리야리한 첫 인상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렇게 처음 만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지만
해태제과 판매관리실로 함께 발령이 났고 5년 가까이
같은 부서에 근무를 하게 되어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동료로 시작하여, 연인이 되고, 다시 부부가 되었으니
해태제과가 우리 사랑의 매개체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렇게 39년의 세월은 흐르고 흘러 오늘에 이르렀다.
결혼기념일인데 뭔가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으나
마땅한 것이 없었다. 아내가 꼭 갖고싶은 것이 있다는
말을 기억하긴 하지만 서울까지 올라갈 틈이 나지않아
준비 못했다. 그 선물은 시간이 나는대로 서울에 가면
꼭 사다줘야겠다. 그래도 뭔가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이 나이에 젊은이들처럼 무슨 이벤트를 할 수 있을까?
그냥 있기에는 허전한 생각이 들어서 읍내 제과점에
전화를 하여 자그마한 케익을 하나 맞췄다. 어제 오후
찾으러 가는 길에 꽃집에 잠시 들렸다. 얼마전 아내가
실내에서 기르는 화초 제랴늄을 사고싶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나서 한 그루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집에는 제라늄이 없단다. 케익 하나만 들고 오기엔
좀 그렇고 하여 자그만 화분에 담긴 화초를 하나 샀다.
꽃말이 "내일의 행복"이라고 하여 결혼기념일과 맞을
듯하여 그 의미를 생각하자는 뜻으로 샀는데 아내가
좋아할까 모르겠다. '자금우(紫金牛)'라는 화초인데
일명 '천냥금'이라고도 부른다. 퇴근을 하며 자동차에
두고 들어왔다가 저녁에 아내 몰래 가져왔다. 조금후
아내가 일어나 내려오면 좋아하려나 모르겠다. 너무
약소하긴 하지만 이곳 산골에서는 이렇게 밖에 표현
할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는가? 이것도 이벤트라고 원,
좀 남사스럽긴 하다. 케익과 꽃 한 그루, 보잘것 없는
소박한 사랑 표현이지만 아내가 기뻐했음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