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정월 대보름날의 추억
2월 8일, 음력 庚子年 정월 대보름날
잔뜩 흐린 대보름날 아침이다. 추위는 많이 가셔졌다.
영하 7도, 어제 아침보다 무려 8도나 높은 기온이다.
그나저나 날씨가 흐려 저녁때 정월 대보름 둥근달을
볼 수는 있을까 궁금하여 날씨 예보를 살펴봤더니
다행히 오후부터는 맑아지고 달맞이를 할 수 있단다.
그런데 뭔가 흩날리는 듯하여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니 티눈이 얼굴에 다가와 닿는다. 스마트폰
후레쉬를 켜고 비췄더니 분명 눈발이다. 이거 뭐야?
남쪽 하늘에는 별이 총총, 북쪽 하늘에는 구름 잔뜩,
촌부가 서있는 산골집에는 눈발이 흩날리니 말이다.
이런 것을 소낙눈이라고 하는 것인가?
그 옛날 어릴적의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이면,
어머님은 일찍 일어나셨고 참으로 바쁘셨다.
"야들아! 쌔기쌔기 일어나라! 복쌈 묵어야제?"
잠이 들깬 채 어린 동생들을 깨워 밖으로 나와서
양은 세수대야에 찬물을 받아 고양이 세수를 한다.
"엄니가 오늘은 눈꼽만 떼도 된다쿠더라."라고
동생들에게 말하면 세수를 하는 것인지 모를 정도로
얼굴에 특히 눈에 물만 묻히곤 했다. 아마 찬물이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곤 밥상에 오손도손 둘러 앉는다.
하나씩 주신 부럼을 깨물게 하고 김을 주시며 손으로
오곡밥을 집어먹게 하셨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칼을
사용하는 것 아니라시며 김치도 생선도 손으로 찢고
가시를 발라 오곡밥을 뜬 숟갈에 얹어주시곤 하셨다.
세월이 한참 흐른 지금의
정월 대보름날 이른 아침에는,
동이 트기도 전인데 산골 부부는 이미 하루를 연다.
그 옛날 어머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아내가 말한다.
"일어났으면 부럼부터 깨물어요. 아들 것도 하나 더..."
"오늘 세수는 꼭 찬물로 해야 하는 거야?"
"알아서 하시구랴! 깨끗이 하면 되는 것이지!"
부럼을 깨물고 난 촌부는 난롯불을 지피느라 바쁘고
주방에서는 복쌈을 준비하느라 아내가 분주하다.
"여보시오! 이리 와서 복쌈 드시오!"
예전과 마찬가지로 손으로 김을 들고 오곡밥을 집어
한 입 먹는다. "당신은 아들 몫도 한번 더 집어요!"
도시에서 혼자 지내는 아들 몫까지 챙기는 아내이다.
혼자 정월대보름 절식을 준비하여 먹을리 만무하다.
20년전 아들을 독립시키고 이곳 산골로 삶터를 옮긴
이후 한번도 빠지지않고 아들 몫까지 챙기는 아내...
"야, 이놈아! 이런 어미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
정월 대보름날은
옛부터 전해오는 우리 고유의 민속 명절이다.
추석날이나 설날처럼 공휴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옛날부터 조상대대로 이어져 오는 고유의 명절이라서
우리 부부는 지금껏 약소하지만 아니 '수박 겉 핥기'
마냥 흉내만 내곤 하지만 그래도 나름 우리 것을 지켜
오고 있다는 생각으로 간단하게라도 대보름 절식을
만들어 먹는다. 늘 잡곡밥을 먹기는 하지만 오곡밥을
짓고 봄날에 뜯어 말려놓은 취나물과 고사리, 두릅과
여름날 밭에서 따다가 오가리로 말려둔 가지와 호박
그리고 늦가을 김장때 말려둔 무청시래기로 묵나물을
무치고, 마을 아우네에서 온 시금치 조물조물 무치고,
장에 나가 사온 무우를 채썰어 들기름으로 볶아 무우
나물을 만드는 아내는 나름 자부심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아내는 해주는 음식을 잘 먹어주는 남편이라
너무 예쁘다나 뭐라나?ㅎㅎ
그런데 정월 대보름과 같은 날이면
옛 생각, 가족들 생각에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설은 나가서 쇠어도 보름은 집에서 쇠어야 한다"라는
옛말도 있듯이 혼자 도시에서 살고있는 아들 녀석은
물론이거니와 각자 사는 곳에서 이것저것 챙겨 먹긴
하겠지만 식구들의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아서...
그 옛날의 어머님 생각, 장모님 생각, 함께 오손도손
산골에서 살았던 처제들과 동서들, 조카 딸내미까지
생각이 떠오르는 정월 대보름날이다.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는 귀밝기 술이 당기기는 하지만 일을 나가야
하니 어제 저녁때 반주로 마신 것으로 대신해야겠다.
그 옛날 정월 대보름날이면 했던 인사,
"내 더위 사가세요!"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은 이런
인사를 하며 놀리는 것이 극히 드물다. 그래도 한번
써볼까? "여러분, 내 더위와 추위 사가실래요?"ㅎㅎ
"정월 대보름 둥근달 보며 소원 빌어보시고, 오곡밥과
묵나물 많이 드시고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