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산다는 것이 참 힘들긴 하지만...
9월 18일, 음력 팔월 스무날
이제 완연한 가을이 시작된 듯하다. 아침, 저녁으론
서늘함에 반팔옷 입기가 부담스럽다. 이렇게 가을은
우리들 곁으로 성큼 다가와 무르익을 모양이다. 하긴
어느새 9월도 보름을 지났고 내일 모레면 하순으로
접어들게 되니 그럴만도 하다. 언젠가부터 촌부에겐
세월이 참 빠르다, 세월이 너무 빨리 흘러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게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몰라도 이 촌부도 나이가 들었다는 것으로 치부하게
되는 것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흔히들 하는 말처럼
가는 세월을 어이 막을 수 있으며, 거스를 재간인들
있을까? 그저 흘러가는 세월의 한 자락이라도 꼬옥
붙잡고 함께 흘러가는 수밖에...
이틀간 아내와 함께 살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가 있는
일들을 우리가 살아가는 그릇속에 한 개 두 개 담고,
우리들이 살아가는 담벼락에 하나 둘 씩을 붙였으며,
초가지붕에 이엉을 엮듯이 우리들 마음속에 한 가닥
두 가닥 엮었다. 삶이란 이렇게 온갖 것들로 채워야
하는 것이구나 하면서... 자식으로서 겪지말아야 하는
일도 생기고, 형제로서 겪지않아도 될 일도 겪어야만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이구나 싶고, 그런 서글픔을 안고
가야만 하는 것 또한 우리네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에
우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에게 닥친
일,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이라면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듯이 한 올 한 올 풀어야만 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몫인 걸...
이래저래 마음이 꽤 어수선하고 복잡한데 설상가상
집으로 올라오는 진입로에 상수도공사가 한창 벌어져
자동차 통행을 할 수 없으니 걸어서 오르내려야 한다.
한 길 낭떠러지와 같은 길을 조심스레 걸어서 다녀야
하니 마음이 더 복잡한 느낌이다. 전날은 보건지소로,
평창 읍내로, 봉평으로, 진부의 오대산부근으로 정신
없이 다녀야 했고, 어제는 경기도 광주에 다녀오느라
하루가 다 가버렸다. 아내는 연신 힘들어서 어쩌냐고
했지만 촌부의 육신이 힘든 것보다 아내의 마음이 더
힘들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그런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고 그런 걱정은 안해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아내에게 위로가 되었을까는 모르겠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집에 도착했다. 오는 길에 며칠
전, 마을 아우네 제수氏께서 고추를 건조기에다 말려
주시겠다고 하여 맡겼는데 다 말랐으니 찾아가라고
하여 잠시 들려 찾아왔다. 고마운 마음에 저녁식사를
함께 하자고 아내가 권했으나 일이 바쁘다며 다음에
하자고 했다. 하는 수없이 조금 한가한 날에 꼭 함께
하기로 하고 말린 고추를 손에 들고 집으로 걸어올라
왔다. 올라오자마자 카페 주차장에 널어놓은 고추를
걷어 들여놓았다. 날씨가 꽤 좋아서 잘 마르고 있는 것
같다. 이 고추만은 꼭 태양초로 말려보겠다는 아내의
작은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촌부의 마음이다.
고추를 걷어들이다 보니 우리 단지에서 태어나 자라는
길냥이 새끼 한 마리가 카페 데크에서 우리가 일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녀석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어미와 함께 태어난 형제와 셋이 단지를 돌아다니곤
했는데 어느날부터 혼자 쓸쓸하게 있는 것이었다. 늘
가까이 가면 도망을 가곤 했는데 지금은 혼자라 그런
것인지 몰라도 예전 어미와 함께 있을 때 처럼 도망을
가지않는다. 아내가 혼자 있는 것이 불쌍하다며 집에
올라오자마자 햄을 한 캔 따서 자그맣게 썰어서 주며
빨리 녀석에게 갖다주라고 했다. 카페 문앞에 앉아서
졸고 있던 녀석이 슬그머니 데크밑으로 들어가더니
고개를 내밀고 쳐다보고 있더니만 먹이를 놓자마자
이내 달려나와 허겁지겁 먹는 것이 아닌가? 배가 꽤
많이 고팠던 모양이다. 집에 올라와 아내에게 녀석이
잘 먹더라고 했더니 고양이 사료를 사다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아무리 길냥이지만 우리 단지에 혼자
남아 저러고 있으니 너무 안스럽다면서... 아내의 고운
마음씨에서 우러난 생각대로 사료를 사다가 먹이를
계속 주어야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