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저 무성한 풀을 어이 할꺼나?
7월 15일, 음력 유월 열사흗날
마른 장마라고 궁시렁거렸더니 요며칠 거의 거르지
않고 매일 장맛비가 소나기처럼 한두 차례 꽤 거세게
쏟아 붓는다. 비가 그치면 후덥지근하던 날씨도 매우
시원하고 상쾌하다. 특히 밤에 비가 내리면 아침으론
물기가 촉촉하여 생기가 돌면서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제서야 제대로 장마철답다고는 해야겠지만 그다지
반갑지가 않은 것이 있다. 장맛비를 듬뿍 들이 마시고
쑥쑥 자라난 풀들 때문이다. 잡초들은 어떻게 저렇게
잘 자랄까? 그래서 질긴 잡초라고 했던가? 하루이틀
겪어온 일은 아니지만 또다시 촌부에게 시비를 걸고
싸움을 걸어오는 저렇게 무성한 풀들을 어이 할꺼나?
예초기를 짊어져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예초기를 지면
올들어 벌써 네 번째 예초기를 짊어지게 된다.
엊그제 아침, 2층 침실 창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보던
아내가 "에고~ 저기 저 풀 자란 것 좀 봐? 장맛비에
어느새 또 풀밭이 되어버렸네. 풀 자란 걸 보면 너무
심란해 죽겠다니까!"라고 했다. 예전 아우들과 함께
살았던 때는 서로 창문만 열면 각자의 집에서 얼굴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던 그 사이에 있는 삼각주와
같은 곳이다. 맏이인 아내는 2층 침실에서 창문 열고
내다보고, 둘째는 식당의 미닫이창을 열고 내다보며,
막내는 거실 미닫이창을 열고 내다보면서 세 자매가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공간이라 아내는 가끔
창문을 열고 내다보며 아우들을 추억하는 것 같았다.
추억은 추억이고 저기 저렇게 자라버린 풀을 뽑을까,
예초기로 깎아버릴까? 호미를 들고 일일이 손으로
뽑으면 다시 자라는 것을 방지할 수는 있지만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서 그냥 예초기를 들이대는 것이다.
여기 뿐만이 아니다. 장맛비는 곳곳의 잡초들을 키워
산골 부부의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집으로 올라오는
중앙통로 양쪽은 물론 보도블록 틈새에도, 정원 사이
길에도, 펜션주변도, 장모님댁 앞뜨락에도, 밭가에도,
요즘은 사용을 하지않는 바베큐장에도, 퇴비장 올라
가는 길에도 그리고 둘째네와 막내네 뒤켠에도 엄청
풀들이 자라 촌부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또 있다.
옆집에서 한번 예초기 작업을 했지만 또다시 볼상이
사납게 풀들이 자라버린 진입로 양쪽도 잘라야만 할
것 같다. 옆집에서 한번을 잘랐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해야겠지 싶다. 옆집은 형님이 건강상태가 안 좋아서
인부를 사서 예초기로 풀깎는 작업을 했다는데...
해마다 이맘때의 하절기에는 넓은 단지에 무성하게
자라난 풀들과의 전쟁을 몇 차례 치르다가 보면 가끔
이런 생각도 하게 된다. "그냥 제초제를 확 쳐버려?"
라고... 하지만 지나온 19년 세월동안 지켜오는 굳은
결심과 신념을 지금와서 깨뜨리고 싶지않아 고생은
될지라도 이내 그 생각을 접는다. 제초제를 사용하면
풀을 죽일 수는 있겠지만 우리 가족에게도 좋지않은
것이며, 자연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생각이라
그러고 싶지는 않다. 한도 끝도 없는, 결코 승리할 수
없는 풀과의 전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될지
라도 차라리 내가 고생을 좀 하는 것이 자연을 살리고
환경을 살리며 우리 가족에게도 좋겠다는 생각에서
예초기를 짊어지려고 한다. 몸고생 좀 하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