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가을비는 싫은데...
2025년 10월 4일 토요일
음력 乙巳年 팔월 열사흗날
이른 아침 이슬비로 시작하더니
오전내내 거센 비가 사정없이 쏟아졌다.
정말이지 이 시기에는 아무짝에도 쓰잘데기 없는
것이 가을비다. 밭에서 일하기도 쉽잖고 설상가상
심혈 기우린 가을채소, 배추가 진무르기까지 한다.
유난히 올가을은 비가 잦다. 농부에게는 마치 쥐약
같은 것이 잦은 비가 아닌가 싶다. 하늘을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마는 괜시리 짜증스런 마음이라
"가을비는 싫은데..."라고 하며 투정을 부리게 된다.
비가 내려 아무일도 할 수가 없어 집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 아내와 처제는 어제
하다가 남겨둔 고구마순 껍질벗기기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여보시오! 똥 마려운 강아지 마냥 왔다갔다
하지말고 장작 넣고 난롯불이나 좀 지펴주시구랴!"
라고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처제가 "무슨 난로불을
지펴? 가을날에..."라고 말하자마자 아내가 말했다.
"비가 내리는 날은 꿉꿉하고 습하여 난롯불 지피면
아주 좋아!"라는 말을 들은 처제가 "습하면 제습기
돌리면 되잖아?"라고 했지만 가만있을 아내가 절대
아니다. "제습기를 왜 돌려? 난롯불을 잠시 지피면
뽀송뽀송 얼마나 좋은데, 여보시오! 빨리 지펴봐!"
마나님 분부 즉시 거행이다. 장작집에서 장작 갖고
와서 잔뜩 넣고 난롯불을 지폈다. 이내 훈훈하면서
습한 느낌은 사라지고 아내 말처럼 뽀송뽀송했다.
지붕위로 뭉실뭉실 피어오르는 연기가 산골스럽다.
그 정취마저 느낌이 좋아 한창동안 바라보았다.
비가 잠시 멈칫하는 사이 아내와 처제 데리고 명절
장을 보러나갔다. 가는 길에 엊그제 딴 늙은호박과
애호박을 박스 세 군데에 나눠 담았다. 이웃마을의
지인들께 나눔을 하기로 한 것이다. 모두들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우리를 언니, 형부라고 부르는
한결 엄마는 추워지면 호박죽 끓여준다며 웃었다.
봉평 농협은 민생회복쿠폰을 사용할 수 없어 멀리
사용할 수 있는 진부 농협으로 가서 명절 차례상을
차릴 장을 봐가지고 왔다. 이제서야 명절 느낌난다.
아들 녀석은 내일 새벽, 집에 온다는 연락이 왔다.
한가위 추석명절이 다가오고 가을비까지 내려서
그런지 스산한 느낌이었는데 비가 그치고 난 오후,
밖에 나갔더니 더한층 가을색이 짙어가는 듯했다.
저 아랫쪽 계수나무는 노랗게 물들어가고 수영장
옆의 높다란 자작나무도 희끄무리하게 퇴색되어
간다. 집으로 들어오는 마당가에는 이제는 과꽃이
지기 시작하는데 노랗게 핀 산국은 제 세상 만난듯
싱싱하고 예쁜 모습이 가을을 혼자 차지하려는 것
같아보여 바라보고 있는데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살포시 앉아 꿀을 빠는 것이었다. 그 모습마저 참
좋아 우두커니 서서 한참 지켜보았다. 자연은 정말
신기하고 오묘한 현상을 연출하는 마술사이다.
아내가 밭에서 무우와 배추를 하나씩 뽑아오라고
했다. 뽑는 김에 둘째네도 하나씩을 뽑아주고 왔다.
그런데 무우는 이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 배추는
영 마땅치가 않다. 비가 너무 자주 내려 그런 걸까?
자꾸 진무르는 것이 아무래도 배추농사는 망친 것
같아서 속이 상한다. 어쭙잖은 농부지만 이럴때는
자존심이 무척 상한다. 25년次 농부인데 말이다.
아내는 올해 또 배추를 사서 김장을 해야 하느냐고
걱정을 하니 영 면목이 없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