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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모든 일은 때와 시기가 있는 법

 

2021년 6월 11일 

음력 辛丑年 오월 초이튿날

 

비가 촉촉하게 내려 기분좋은 초여름날 아침이다.

기쁜 마음에 우산을 바쳐들고 밭으로 나가보았다.

요며칠 한여름과 같았던 고온으로 더위에 지쳤던

농작물들이 목마름을 해소하여 싱그럽게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어제 조금은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밭일을 한 보람이 느껴진다. 산골부부의 텃밭농사

중에서 80%에 가까운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고추농사이다. 어제는 거의 하루종일 고추밭에서

살다시피 했다. 한낮에는 더워서 일하기가 힘들어

선선한 이른 아침과 햇살이 퍼지기전인 아침나절,

그리고 햇볕이 누그러지는 저녁무렵에 일을 했다.

고추 곁순따기와 방아다리 고추따기를 마무리한

것이다. 600여 그루의 고추를 하나하나 일일이 

붙잡고 Y자 모양의 방아다리 밑으로 자란 가지와

잎과 방아다리 사이에 피는 꽃이나 열리는 고추를

모두 따내는 일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농사가 어디 쉬운 것이 있겠는가? 모든 일은 때와

시기가 있는 법이지만 특히 농사는 더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어제 일기에 고추 곁순따기와 방아다리

고추따기를 한다고 했더니 농사를 모르는 도시에

사는 분들께서 왜 그렇게 해야 하느냐고들 하였다.

사실 촌부도 이곳에 와서 텃밭농사를 지으며 알게

된 것이다. 고추모종이 자라는 것을 보면 처음에는

모르지만 일정시기가 지나면 Y자 모양으로 가지가

두 갈래로 벌어지며 자란다. 그 첫 번째 Y자 모양을

방아다리라고 하는데 그 사이에 첫 번째로 달리는

고추를 방아다리 고추라고 한다. 이 첫 번째 달리는

고추와 방아다리 밑에서 자라는 곁순은 영양분이

위로 올라가는 것을 방해하여 고추의 성장을 방해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따주어야 튼실하게 자라

많은 고추가 달리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꽤 손이

많이 가는 일이지만 따주어야 한다고 하여 해마다

촌부는 조금은 힘들어도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냥 두어도 자라며 고추도 열린다. 그만큼 수확이

적을 뿐이기는 하겠지만... 이런 것을 보면 농사도

과학이라는 생각도 든다. 더불어 때와 시기를 누가

더 적절하게 맞춰 농사를 짓느냐에 따라 수확량이

많고 적음이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예전에 도시에서 직장생활 하던 때, 뭐가 잘 안되고

힘이 된다 싶으면 이렇게 하는 말을 자주 듣곤 했다.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짓을까?'라고... 이 말은 농사를

모르고 하는 말이다. 특히 이 말에서 '농사나..'라고

하는 것은 너무 농사를 우습게 알고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농부님들을 업신여기는 것이라서 적절치

못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 모든 일이 어디

하나 쉬운 일이 있을까마는 농사를 우습게 알고 또

농부를 업신여기는 그런 말들은 삼가했으면 좋겠다.

하여간 이 촌부는 전문적인 농부는 아니지만 나름

소신을 가지고 나름의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농사를

지으며 산골살이를 하리라고 다짐한다.

 

큰밭 윗쪽 산비탈에 요즘 난리가 났다. 6월에 피는

아카시아꽃에 꿀을 따는 벌들의 윙윙 거리는 소리,

옆에 가기가 겁이 날 정도라고 할까? 다른 고장에는

이미 꽃이 지고 없겠지만 이곳 산골은 지금이 한창

만개한 아카시아 꽃향이 사방 진동하는 시기이다.

뿐만 아니라 땅에는 데이지, 붓꽃을 비롯한 꽃들이

제각기 나름의 예쁜 모습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 꽃들도 때와 시기에 맞춰 피는 것을 보면 자연은

늘 위대하고 신기하고 오묘하고 경이롭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이렇게 식물들도 때와 시기를 잘

맞춰 꽃을 피우는데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우리

인간들은 늘 때와 시기를 제대로 못맞춰 우왕좌왕,

안절부절이니 한심한 노릇이다.

 

어젯밤엔 녀석들이 안부전화를 하기로 약속이라도

한듯이 때와 시기를 잘 맞춰서 차례로 전화를 했다.

조카 딸내미와 아들 녀석이 전화를 주었다. 아내가

백신 접종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했단다.

아울러 오랜 세월의 직장생활을 접고서 백수가 된

큰이모부와 아비가 걱정된다고 했다. 촌부 성격을

잘 아는 녀석들이라서 이제는 제발 일을 줄이고 좀

쉬면서 즐겁게 지내라는 충고와 같은 당부를 했다.

전원생활 한답시고 일찌감치 대학 2학년때 독립을

시킨 아들 녀석, 초등학교 1학년부터 대학에 가기

전까지 꽤 오랜 세월을 이곳에서 함께했던 딸내미,

이 두 녀석은 자식이 귀한 우리 산골가족 세 집의

공동 자식이나 다름이 없다. 두 녀석 다 교육계에

종사하는 직업인 강사와 교사라서 그런지 심성이

아주 곱다. 또한 세 집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면서

올곧게 자란 녀석들이라서 늘 고맙고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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