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할 일이 와 이리 많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몸보다도 마음이 더 바빠진다.
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면 해야만 하는 일들이 많아져
그러는 것이 산골의 가을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들이
거의 대부분 해야하는 시기가 한꺼번에 생겨 급한 것
부터 하나씩 정리를 하긴 하는데 제한된 시간에 혼자
하려니 어쩔 도리가 없다. 일에 치이는 것이 하루이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이 가고 세월이 흐를수록 좀
벅차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 아우들이 있을
때는 함께 하거나 나눠서 했었기에 이렇게 힘들게는
하지않았었기에 새삼 아우들과 함께 했었던 시간들이
많이 그리워진다. 옛날 속담에 '드는 줄은 몰라도 나는
줄은 안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이 난다고나 할까?
그래도 아침 저녁은 물론이고 하루에도 몇 번씩 지나
다니며 보게되는 가을채소인 배추, 무우, 총각무우와
청갓, 쪽파가 자라는 것을 보면 아무리 바빠도 기쁨에
걱정이 사라지곤 한다.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
이제는 밭을 한 가득 채웠다. 커가는 것을 매일 지켜
보는 마음은 뿌듯하다. 무농약으로 재배를 한답시고
시력도 별로 좋지않은데 쪼그리고 앉아서 청벌레를
잡겠다고 배추 포기마다 이리저리 뒤지고 있는 촌부
모습을 보고 어느해 마을아우가 '참 할 일 없는 갑소!'
라고 했던 기억이 나서 혼자 웃곤 한다. 벌레가 먹고
진딧물이 먹고 메뚜기가 먹고 남은 것은 우리의 몫이
될 것이지만 가능한 적게 빼앗기려고 이러고 있다.
작은 밭의 가을채소는 입동 무렵까지 기다리면 된다.
일이 많은 곳은 큰 밭인데... 줄콩 마른 줄기도 걷어야
하고, 들깨도 베어서 말려야 하고, 올해 처음 심어본
작두콩도 따서 이용방법을 생각해봐야 한다. 그 뿐이
아니다. 거의 끝물에 가까운 고추도 마무리를 해야만
한다. 계속 빨갛게 익고 있으니 빨간 고추는 따야하고
조만간 된서리가 내리기 전에 나머지는 아까우니까
따서 필요한 도시의 지인들께 보내야 하고, 메주콩과
쥐눈이콩도 베어 햇볕에 말려 도리깨로 떨어야 한다.
그래도 이 가을에 해야 할 일은 더 있다. 마른 꽃대도
잘라야 하고, 저 위쪽에 쌓아둔 장작용 나무도 집으로
갖다 날라야 하고 또 토막토막 잘라 쌓아놓아야 한다.
나열하고 보니 할 일이 많기는 많구나. 언제 다 하지?
어제 오후부터 예보에도 없던 가을비가 늦은 밤까지
부슬거리며 내렸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밤에 내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오뉴월 하루해가 무섭다는 말과는
의미가 다르겠지만 요즘같은 가을날에는 하루햇볕이
아쉽기 때문이다. 사실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분들은
이맘때 내리는 비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죽
하면 옛말에 가을비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라
했겠는가? 간밤에 내렸던 비에 오늘 아침은 촉촉하게
시작을 한다. 비가 내려서 기온이 많이 떨어지겠구나
싶었는데 그나마 다행히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할 일이야 하면 끝이 날테니 서두르지말고 차근차근
해보자며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