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세상에, 이런 소나기는 처음이네!
2021년 7월 16일
음력 辛丑年 유월 이렛날
며칠전에 국가보훈처에서 이런 문구가 적혀있는
'국가유공자의 집'이라는 국가유공자 명패를 보내
왔다. 그 문구는 '오늘의 대한민국은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공헌 위에 서 있습니다. 국가유공자의 위국
헌신에 대하여 국민적 감사와 존경의 뜻을 담아
명패를 드립니다."라고 쓰여있었다. 감사한 일이다.
2006년 작고하신 장인어르신께서 6.25전쟁 당시
대학생 신분인 학도병으로 참혹한 전투에 참전하신
것이다. 전쟁을 치르며 큰 부상을 입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옛날에는 상이용사라고 했으며, 요즘에는
언어가 순화되어 국가유공자라고 부르는 것이다.
당사자 장인어르신께서는 이미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지만 국가에서 남아있는 보훈가족에 대한 예우를
이렇게라도 해주는 것 같아 감사한 일이라 여긴다.
장인어르신의 생전 모습을 떠올리면서 정성을 다해
명패를 장모님댁 현관문 옆에 달아놓았다. 이런 날
장모님께서 집에 계셨더라면 좋아하셨을 텐데 지금
요양원에 계셔서 함께 못하니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어제는 전혀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점심때가
지날 무렵 천둥, 번개에 엄청 거센 돌풍까지 동반한
소나기가 요란하게 쏟아졌다. 세상에, 이런 엄청난
소나기는 살다살다 처음이다. 하늘이 쪼개졌는지,
하늘에 구멍이 났는지 그렇게 거센 장대 그 이상의
크기같은 빗방울이 강판지붕 위에 쏟아지는 소리는
마치 쇠망치로 두들기는 듯했다. 저만치 큰밭 윗쪽
커다란 나무들이 휘청거리며 부러질 듯이 휘어지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자빠질 것 같았다. 걱정스러웠다.
저 정도라면 밭작물은 어떨까 싶어 창문으로 내다
보았지만 분간을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세찬 비바람이 그치고 따가운
햇볕이 쨍쨍 나왔다.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꽃밭에는
서있어야 할 꽃들이 다 자빠져 있었다. 꽃이 문제가
아니었다. 부랴부랴 밭으로 달려갔다. 작은밭은 큰
문제가 없어 보였다. 간간이 고개를 푹 숙인 것들이
보이기는 했지만 큰 피해는 없었다. 큰밭의 고추는
거센 비바람에 거의 다 자빠지고 쓰러져 있는 것이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꺾어지지 않았다는 것,
안도의 한숨을 몰아 쉬었다. 봄부터 지금껏 아내와
둘이서 얼마나 정성을 쏟고 공을 들였는데...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며 진작 고추끈 세 줄 묶기를 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를 했다. 사실은 어제 아침에 할까
하다가 이슬이 맺혀있어 고추끈을 묶다가 잘못하면
꺾일 염려가 있어 저녁 해질 무렵에 하려고 했는데
그만 예기치않은 엄청난 강풍과 함께 거센 소낙비가
쏟아지는 사달이 나고 말았다.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으나 뒷수습을 해야겠기에
집으로 와서 고추끈 배낭을 매고 다시 작은밭으로
들어가 고추끈을 묶었다. 두어 그루가 꺾어져 있는
것이 있었다. 마음은 아프지만 녀석들이 꺾어지는
것으로 액땜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저녁준비를
마친 아내가 나와 둘이서 큰밭으로 가서 마무리를
했다. 평상시 같으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즐겁게 일을 했을 텐데 어제는 그럴 기분도, 그럴
여유도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두 번째 묶어준
고추끈에 의지하고 있는 녀석들이 혹시나 꺾여질
세라 조심 또 조심 세우면서 묶느라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고추끈 세 줄 묶기를 마쳤다. 일을 마치고 나서 또
한참 밭을 바라보았다. 이만하기가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제서야 아내와 함께 빙그레 웃었다.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파랗게 보였고 비를 다
쏟아버린 구름은 가볍다는 듯이 둥실둥실 떠가고
있었다. 한바탕 소동을 벌인 뒤라서 산골은 또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하마터면 고추농사 몽땅 망칠뻔
했네. 휴~~~ 이제는 안심해도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