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우와~ 이거 운치있네!
2020년 11월 15일 음력 庚子年 시월 초하룻날
이른 아침,
이제는 밭에 나가도 훵한 모습일뿐 아무것도 없다.
밤사이 내린 서리에 서릿발이 서걱서걱하다. 맨 땅,
텅빈 밭고랑을 따라서 아무 생각없이 걸어보았다.
적막한 산골의 아침, 텅빈 밭은 쓸쓸한 느낌이라고
할까, 외로움이 깃든 느낌이라고 할까? 정작 모든
것을 몽땅 내어주고 비워진 밭은 아무 말이 없는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주인 마음은 왜 이렇게
안스러울까?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텅빈 밭주변을 한바퀴 돌아보다가
저만치 아랫쪽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아차! 싶었다.
많은 시간, 많은 꽃을 살피고 감상하며 좋아했으면
마른 꽃대를 잘라줘야 또 내년을 기약하는 것인데
이놈 촌부, 뭐가 그리도 바쁘다고 잊고 있었을까?
해마다 서리 내리고 얼음이 얼고 추위가 오기전에
마른 꽃대를 잘라주었다. 올해는 모든 걸 여느해에
비해 빠르게 서둘러서 했다고 생각했는데 눈에 잘
보이는 앞뜨락 마른 꽃대만 자르고 다른 곳은 깜빡
잊어버렸다. 잊을 것을 잊어야지!
그런데
다가가서 보자마자 '우와~ 이거 운치있네!'라면서
혼자 중얼중얼... 바로 마른 꽃대 위에 서리가 내려
또다른 꽃, 하얀 서리꽃이 핀 것이다. 변명같지만
마른 꽃대를 미처 자르지 않았더니 이런 생각지도
못한 멋떨어진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꽃이 아닌
꽃, 그러나 이 시기, 이 무렵에만 보게 되는 그런
꽃이 바로 촌부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라서 새로운
감흥을 느끼며 얼빠진 사람처럼 이러저리 발걸음
옮겨가며 이른 아침부터 혼자서 히죽히죽거렸다.
마른 꽃대자르기를 하지않은 걸 오히려 잘했구나
싶기도 하다면서...
그러다가
또다른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는 게으름뱅이 촌부,
그냥 이대로 놔두면 또다른 꽃을 보게 되지않을까?
머잖아 눈발이 흩날리게 되면 눈꽃이 될테니까...
마른 꽃대 위의 새하얀 눈꽃, 그 모습을 상상하며
또다시 희죽거린다. 그 풍경 보며 감상하려면 지금
이 늦가을에 굳이 예초기를 짊어지거나 낫을 들
필요는 없겠지 싶다. 게으름의 극치라고 하려나?
얼토당토앉은 어처구니 없는 변명이라 하려나?
올해는 그냥 이대로 두고 내년 해빙기에 자를까?
갈수록 변명이 늘어가고 게으름까지 늘어간다.
산골의 이른 아침은 영하 2도, 이 정도쯤이야 한다.
서리는 여전히 하얗게 내려앉았다. 음력으로 시월
초하루라 추워질 때도 되긴 되었다. 일어나자마자
난롯불부터 지폈다. 늘 하는 말, '난로가 효자야!'
라고 하며 오늘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