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깨소금과 아들 녀석
2020년 11월 12일 음력 庚子年 구월 스무이렛날
아내가
주방 아일랜드 식탁 위에 플라스틱 절구통을 놓고
무언가를 넣고 쓱쓱 가는 것 같기도 하고, 콩콩 찧는
것 같기도 했다. 무엇을 하길래 저러고 있는가 싶어
궁금하여 다가가 봤다. 깨를 볶아 자그만 절구통에
넣고 빻아 고소한 깨소금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했더니만 깨소금을 빻고 있었구만!"이라며
돌아서려는데 아내가 혼자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와? 뭐가 그리 우습노? 깨소금 만들다가 와 웃노?"
"깨소금을 보면 우리 아들 어릴때 생각이 나서..."
"뭔데? 깨소금을 보면 아들 생각이 나다니?"
사연인 즉슨,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렸을 때 하루는
아내가 아들에게 심부름을 시켰다고 한다. 요즘이야
아이들에게 그런 심부름을 시키지는 않겠지만 그땐
이따금씩 심부름을 시키곤 했다. 음식을 하고 있던
아내가 깨소금이 필요했는데 떨어진 것을 몰랐단다.
그래서 아들 녀석에게 돈을 주며 심부름을 시켰단다.
"지훈아! 지하상가 가게에 가서 깨소금 좀 사올래?"
라고 했는데 조금후 가게에 다녀온 아들 녀석이 꽤
걱정스런 눈초리로 들어오더니 이렇게 말하더란다.
"엄마! 아줌마가 깨는 주셨는데 소금은 안주셨어!"
그 말 들은 아내는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단다.
어린 아들은 '볶은 참깨를 빻은 것'이 깨소금이라는
것을 잘 모르던 때라 깨하고 소금을 각각 사오라는
것으로 알았던 것이다. 우리말에는 두 개의 명사가
합쳐져서 하나의 단어가 되는 복합명사가 참으로
많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은 물론이고 외국인들이
우리말, 우리글을 어렵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랬던
아들 녀석은 어려서부터 장래 희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기억을 하건데
중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결국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다. 이 촌부의 어릴적 꿈이 바로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는데
아들 녀석이 아비의 꿈을 대신 이루어주는 것 같아
너무나 기뻐했다. 그런데 아들 녀석은 사범대학을
졸업후 국어교육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아니 엉뚱한 녀석이다. 그래도 고마운 것은 인정을
받아 인기가 좋다고 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그건 그렇고,
어젯밤 아내는 야식으로 가래떡을 난롯불에 구워서
내놓았다. 어제는 농업인의 날이며 가래떡 Day라서
구워 봤단다. 가래떡 Day는 2006년부터 농업인의
날을 널리 알리고 쌀 소비 촉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농민의 날이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일기를 썼더니만 아내는 가래떡을
구워 가래떡 Day를 기념하자고 했으니 텃밭농사를
짓는 산골 부부는 부창부수(夫唱婦隨)인가보다.
산골의 오늘 날씨는,
영하 5도, 하얀 서리, 얼음, 바람이 없어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