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대파 이삭줍기
2024년 10월 30일 수요일
甲辰年 음력 구월 스무여드렛날
그동안 뭐 그다지 특별한 일상도 아니었는데
어찌어찌 하다보니 어느새 10월 막바지이다.
이상하게 매월 이맘때 월말이 되면 혼자 하는
말은 늘 똑같다. "세월 참말로 빨리 갔삐네!"
라고 한다. 세월을 붙잡을 재간도 없으면서...
문득 70년대 서유석이 부른 노래가 생각난다.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맞는 말이다! 제아무리 용빼는 재주가 있다고
한들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재주를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나이듦을 실감하며 신세한탄을
하는 촌부의 얼토당토않는 넉두리일뿐이다.
오늘은 영상 5도에 머무는 기온, 바람 기운이
전혀 없다. 서늘함이 감돌긴 하지만 연일 끼던
안개도 없다. 동이 트기전이지만 서리가 내린
것 같지는 않다. 이 정도 날씨라면 일상생활을
하기에는 딱 좋은 그런 날이다. 월말이라 다시
이틀동안은 일을 나가지 않는다. 집일을 하긴
해야하는데 어떤 일부터 해치울까 망설인다.
어제 나갔던 일터, 일을 하면서도 일하는 것이
아닌 가을 풍광에 젖어 푹 빠졌다고나 할까?
단풍이 알록달록, 울긋불긋한 것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얼마나 예쁘게, 아름답게 물들어
있는지 일을 하다말고 자꾸만 발걸음이 멈추는
것이었다. 촌부만 그런가 싶어 뒤돌아서 보면
함께 일하는 동료 형님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래, 맞다! 아름답고 예쁜 자연에 도취된다는
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은 상관없다. 남녀노소,
나이 불문이다. 이럴때 바로 사람의 마음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다 같은 생각이구나 싶다.
이삭줍기, 사전적 의미로는 이렇게 정의한다.
'농작물을 거두고 난 뒤, 땅에 떨어진 낟알이나
과일, 채소 따위를 줍는 일' 이라고 적혀있다.
사실 우리는 가능한 주인장 농부의 허락없이
남의 밭에 들어가 이삭줍기를 하지는 않는다.
요즘 추수가 끝난 가을 들녘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자동차를 세워놓고 이삭줍기를 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한다. 거의 대부분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이다. 추수가 끝난 밭이기는 해도
오죽하면 농부님이 거둘 생각을 않고 아까운
농작물을 그냥 밭에 남겨두었을까 하는 생각,
남겨둔 밭에 남들이 들어가 이삭줍기를 하는
그 모습을 보는 농부님의 마음은 과연 어떨까?
작은 농사지만 농사짓는 사람으로서 이따금씩
이런 생각에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마음이 들곤
한다. 하긴 그냥 밭에 두면 썩어 거름이 되기는
할 것이다. 아까운 마음에 지나가는 사람들이
먹을만 한 것을 뽑거나 캐가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농부님들의 심정을 한번쯤은
헤아려보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여간해서 이삭줍기를 하진 않지만 해도 된다는
허락이 있으면 아까운 마음에 이따금씩 하기는
한다. 어제 오후, 아내가 소일거리 삼아 나가는
학교의 인근 기슭 대파밭에서 이삭줍기를 했다.
꽤 오래전 추수가 끝난 밭이고 밭뙈기로 대파를
구입, 추수를 마친 중간상인이 상품성없는 것을
남겨두고 간 것이라서 쓸만한 것들은 뽑아가도
된다고 했다. 그냥 손으로 뽑으면 꽤 단단하게
묻혀있어 뽑히지를 않는다. 차에 있는 손괭이로
캐다시피하며 뽑아야했다. 추수가 끝난 뒤에도
자란 흔적이 보였다. 좋은 것만 골라 캐고 뽑아
한 곳에 모았더니 꽤나 많은 양의 이삭줍기를
한 것이었다. 마대자루에 담고 바나나 박스로
한가득 담았다. 밭에는 아직 많이 남아있지만
더 이상 욕심을 내지는 않았다. 뽑고 캔 대파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 뿐만아니라 바나나 박스에
담은 것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서울 막둥이에게
보냈다. 이삭줍기이긴 하지만 주인장 농부님께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라고 마음속으로
인사를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