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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촌부의 단상]

가을 가뭄이라고?


10월 12일 음력 庚子年 팔월 스무엿샛날

이른 아침 공기가 꽤 쌀쌀하다. 아니 차갑다는 말이

더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이제 아침, 저녁으로는

겉옷을 조금 두터운 것으로 입어야 할 것 같다. 벌써

세월이, 날씨가 이렇게 되었나? 또 허튼 소리를 한다.

세월이 빠르다느니, 날씨가 왜 이러느냐면서 말이다.

좋은 계절이라며 사색을 한답시고 고요함을 벗삼아

아직 어둠이 채가시기도 전인데 아침 산행을 나선다.

이 시간을 즐기는 나는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세상사

제아무리 복잡하게 이리저리 칡넝쿨 얽히듯 어지럽게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이 시간 만큼은 안중에도 없다.

마치 세속을 떠나 수양, 수련하는 수행자들의 세계에

들어선 느낌이다. 녹색의 푸르름이 바래지고 사그라

지고 있는 풀들이 자빠져 훵하게 비어가는 숲속이다.

그래, 비어지는 듯한 숲속의 모습처럼 이 시간만큼은

내마음 속에 가득찬 욕심도 버리고, 채우려는 마음도

비우자고 다짐을 하며 혼자 산을 오르곤 한다.


올가을은 유난히 가뭄이 심한 것 같다. 지난 여름날

너무 비가 많이 자주 내려서 하늘을 원망했더니 그만

하늘이 노했나 보다. 그래서 이 가을 때아닌 가뭄이

드는 것일까? 흔히들 농촌에서는 가을비를 쓰잘데기

없는 비라고 하여 반기지 않는다. 그러나 아주 가끔은

비가 내려야 가을 채소의 성장이 도움이 되는 것인데

이렇게 가물면 걱정스럽다. 하늘의 뜻에 따라야 하고

자연의 이치, 자연현상에 순응할 수밖에 없으니 정말

농사가 쉬운 일은 아니다. 겨우 텃밭농사를 짓고 있는

촌부가 이럴진데 농부님들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가뭄이라고 하여 마냥 비를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호스를 연결하여 가을 채소들에게 물을 주기로 했다.

지난 봄, 여름에는 이따금씩 밭에 물을 주기도 했지만

가을날에 물주기를 한다는 것은 드문 일이다. 가뭄에

채소들의 성장이 더디게 되니 어쩌겠는가? 성가시긴

해도 불과 20여일 후에는 수확을 해야 하는 것이라

빨리 자라게 해야만 한다. 이미 서리가 지난주에 서너

차례 내려서 가을 채소의 성장에 다소 지장을 초래한

것 같다. 그러나 아직은 늦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

봐야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농사가 참으로 어려운 것

같다. 비가 내릴때 까지는 당부간 2~3일에 한번씩은

가을 채소들에게 물주기를 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이른 아침, 뒷산으로 아침 산행을 하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한동안 잣나무숲을 가보지 못했는데

혹시나 하고 잣나무숲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동안

청설모가 따놓은 것인지 바람에 저절로 떨어졌는지는

모르지만 군데군데 잣송이가 많이 보였다. 반가웠다.

올해는 잣이 흉년인 것 같아 한동안 주우러 다니다가

포기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이게 무슨 횡재인가?

자그마한 자루로 가득 주워 어깨에 매고 내려왔더니

아내가 놀라워 하면서 어찌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마음을 비웠다고 했더니 이렇게 선물을 주는 것인가?

그나저나 그동안 주워다놓은 잣송이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우리가 먹을 만큼만 남겨두고 읍내 수집상에

내다 팔아버릴까? 팔아서 그동안 고추수확을 하느라

고생한 아내에게 맛있는 것이나 사주어야겠다.


어제 아내는 아쉬운 마음과 기쁜 마음이 교차했단다.

올해의 마지막 붉은 고추 수확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서리가 내리고 잎이 냉해를 입어 아직은 익고 있지만

더 이상 그냥 둘 수 없다. 여느해에 비해 고추농사는

올해가 가장 풍작을 이뤘다. 다른 고장이나 다른 집은

고추농사가 시원찮아 수확이 영 별로라는데 우리는

오히려 잘 되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프로 농부들도

날씨탓에 고추농사를 망쳤다고 하는데 아무추어인

우리가 고추농사를 잘 지었으니 좀 우습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깨가 으쓱해진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격인가? 사실 우리가 한 것보다 하늘과 땅의 도움이

거의 전부다. 우리는 그저 양념처럼 정성을 조금씩

보탰을 뿐이다. 하여간 뿌듯하다. 그동안 건조기로

말려놓은 건고추가 큰 비닐봉지로 두 개씩이나 된다.

이제 마지막 고추를 건조시켜 읍내 방앗간에 나가서

고춧가루를 빻으면 올해 고추농사는 끝난다. 그런데

고춧가루가 얼마나 나오려나? 무척 궁금해진다.IMG_20201012_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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