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가을이 익어가네!
10월 11일 음력 庚子年 팔월 스무닷샛날
어느새 10월도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며칠전 사나흘 이른 아침에 서리가 하얗게 지붕을
덮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다행히 평년 기온을 회복
하여 많이 포근해지긴 했지만 이제부터는 차가워
지면 차가웠지 더 따뜻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
그러니 가을날이면 할 일이 많은 촌부로서는 마음이
급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몸이 따라주어야 하는 것인데
날이 갈수록 속도는 더디다. 그래서 늘 하는 생각과
하는 말이 조금 느리더라도 천천히 여유를 가지고
느긋하게 살아가자면서 스스로를 다둑거리고 있다.
그러나 그 말과 달리 행동이 엇박자를 내기도 한다.
어쩔 수가 없다. 산골살이를 하다보면 때를 맞춰야만
하고 시기를 놓치면 낭패를 당할 수가 있는 것이라서
늘 바쁘다고, 빨리 해야한다면서 종종거리고 있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아무리 바쁘다고 해봐야 결국은
시간이 다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그동안은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마음 고생에, 몸고생까지 했던 것 같다.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이 모든 것은 욕심에서 비롯 된 것, '내려놓자!' 였다
산골살이는 자고나면 일이고 보이는 것이 일이고 또
지천에 늘린 것이 일이다. 때론 해도 그만 하지않아도
그만인 일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런데 이놈의 성질이
지랄같아 본인 스스로는 물론 아내까지 고생시켰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이놈의 성질부터 과감하게
죽이자!'였다. 그리고 실천으로 옮겼다. 처음엔 무척
힘이 들었다. 오랫동안 지녀온 버릇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되더라는 것이다. 내려놓고 비우고 하다보니
언젠가부터 느긋함이 도를 지나치다 싶을 정도까지
되었으니까 말이다. 세상도 다 변하는데 한낱 촌부인
주제에 똥고집을 부려보아야 돌아오는 것은 몸고생,
마음 고생 뿐이라 변화를 시도한 것은 내 인생에 있어
잘한 것 중 최고가 아닌가 싶다.
이제 서서히 가을이 익어간다. 온갖 특이한 모양새의
꽃을 피웠던 야생초들은 이제 하나 둘 씨앗을 맺으며
번식의 준비를 하고 있다. 조금 빠른 녀석은 어느새
싸앗을 바람에 날려보내고 앙상한 모습으로 있는가
하면 또 어떤 녀석은 가을 햇볕에 씨앗을 익히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게 가을은 모든 것들을 익히는 계절이
아닌가 싶다. 스산한 저녁무렵에 밭에서 들어오면서
서산으로 지는 해를 보았다. 석양의 노을이 참 예뻤다.
이렇게 가을이 익어가고, 저렇게 하루를 마감한 해가
멋진 노을을 만들면서 지듯이 나 또한 가을처럼 잘
익어가며 지는 노을처럼 멋지게 내 인생의 마무리를
할 수가 있도록 조금은 느리더라도 천천히 여유롭게
살아가자고 또다시 다짐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