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닮고 싶은 선배님, 그는 누구인가?
촌부가 그를 만난 것은 33년 전의 일이다. 당시 촌부
나이는 갓 서른을 넘은 나이였고 그는 촌부보다 두 살
위였던 서른 두살로 기억한다. 당시 촌부는 누구라도
좋은 회사, 튼튼한 기업으로 소문이 난 해태제과에서
자회사인 광고회사 코래드로 전출이 되었다. 거기서
그를 처음 만났다. 기억하기로 그는 당시에 국제상사
담당 AE(광고기획자)였고 직급은 대리였으며 성격이
좋은 사람으로 평판이 나있었다. 같은 직종이 아니라
같은 부서는 아니지만 연결된 업무를 하였기에 거의
매일 만날 정도였다. 또한 퇴근후 여의도 상가빌딩,
백상빌당의 주점에서 종종 만나곤 했던 기억이 난다.
촌부도 꽤 술을 즐겼으며 그 또한 회사내에서 이름난
주당에 속했던 것이었다. 한 십여 년 그렇게 직장에서
함께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다가 그는 타사로
옮겼고 촌부는 IMF로 인해 해태그룹이 와해가 되는
시련과 격동의 시기를 겪어야만 했다. 오로지 28년을
한 그룹의 세 회사에서 근무했던 촌부는 종종 들리는
소문으로 그의 소식을 듣곤 하였다. 촌부가 18년 전
산골로 내려온 이후에는 그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몇 해 전 경북 봉화로 귀촌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처를 수소문하여 통화를 했고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을 하고 지난해 한번 아내와 함께 그가 사는
봉화 시골집에서 20여 년 만에 반가운 해후를 하였다.
그동안 광고계를 떠나 남다른 이력이 많이 붙어있었다.
그가 바로 광고쟁이에서 또다른 이력을 갖고 있는 분,
서암 오시환 성님이다. 촌부가 대충 알고있는 성님의
남다른 이력을 살펴보면, 외국에 나가 셰프가 되었고
국내에 들어와 서울 한복판에서 꽤 유명한 음식점을
운영하다가 자비를 나르는 수레꾼이라는 봉사단체의
책임자로 저멀리 캄보디아에 학교를 세우는 등 아주
활발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으며, 또한 카피라이트와
광고기획을 했던 광고쟁이 탁월한 소질로 책을 집필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책의 엮은이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봉화에 귀촌을 하여 농사는 물론
야생화에 취미를 붙였고 목공예도 소질을 발휘하여
도마를 비롯한 온갖 것을 만드는 솜씨까지 발휘하고
있다. 귀촌 이듬해인가 화재사고가 있어 몸고생에다
마음 고생을 하였지만 담담한 성격 때문인지 대담한
성격 탓인지는 모르지만 꿋꿋하게 다시 시작을 하는
대단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래서인지 잘 모르지만
거의 매일 SNS로 소통을 하고 있으며 거리가 멀어서
자주 만나진 못해도 격의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다.
형이 없는 촌부라서 그런지 늘 친 형님처럼 생각된다.
그래서 촌부는 그의 삶이 많이 부럽고 그를 닮고 싶은
생각이라 경상도에 살고 계시고 촌부도 경상도 출신
촌놈이라서 경상도 사투리로 성님이라 부르고 있다.
어제 그 성님의 봉화집에서 모임을 가진 후 하룻밤을
묵고 오늘 하루를 봉화 성님댁에서 시작한다.
봉화의 아침 기온은 영하 9도인데 산골인 봉평은 영하
18도란다. 아마 읍내보다 2~3도 낮은 촌부네 산골집
기온은 영하 20도는 될 것 같다. 이맘때 아침이면 늘
난롯불을 지필 시간인데 아내가 혼자서 불을 지폈는지
모르겠다. 전화를 해봐야겠구나.
참. 좋은 지인을 두었네.. 멋진 인생은 그럼 삶 아닐까. 하고 싶은 일 하고 사는것.. 부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