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아버님을 추억하고 와서...
2025년 12월 1일 월요일
음력 乙巳年 시월 열이튿날
달력을 넘겼다.
이제 달랑 한 장이 남았다.
2025년의 마지막 달, 12월이다.
25년전 서울에서의 12월은 엄청 바빴다.
그 누구나 다 그랬듯이...
그 이후,
25년간 평창에서의 12월은 아주 한가롭다.
그 누구와는 다른 삶이라서...
'세월 참 빠르네!'라고 중얼거렸다.
해마다 그랬듯이 이렇게 12월을 맞이한다.
마음 한 켠엔 12월이 좀 바빴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2025년을 보내고 싶다.
여느해와 마찬가지로 바쁘진 않을 듯하지만...
오늘도 어제처럼 영상 6도에 머무는 아침이다.
바람이 제법 불지만 그다지 차가운 느낌은 없다.
이게 봄바람이지 겨울 바람인가 싶을 정도이다.
어쨌든 따뜻하여 좋긴 하다.
'나름 분주하게 움직였기에 후회하지도 않고
딴에는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남들이 보는 내 삶은 어떤 모습으로 비춰질까?
내 일상, 내 삶은 온전히 내 것이고 내 책임이라
남들을 의식할 필요 없음이고 상관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사회의 일원인지라 사회규범에 어긋난
언행이나 행동은 자제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
그런 생각으로 나름 지금껏 내 삶을 살아왔으며
내 인생 마지막날까지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내 아버지께서 77년 삶을 그렇게 사셨던 것처럼...'
어제 이천호국원 아버님 위패봉안탑 앞에서 문득
스쳐간 생각이며, 마음속으로 약속한 다짐이다.
어제 2025년 11월 30일, 음력 시월 열하룻날은
아버님 17주기 기일이었다. 부모님께서 남겨놓은
우리가족은 모두 17명이지만 어제는 아내와 막내
그리고 촌부 이렇게 셋이서 이천호국원 아버님의
위패봉안탑에서 추모행사를 가졌다. 생각하건데
아버님, 어머님이 좀 섭섭해 하셨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맏이인 촌부는 식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상님 기일이라고 생업을 제쳐두고 오지는 마라,
특별한 일이나 사정이 있으면 참석을 안해도 된다,
기일이 아니라도 시간이 허락하면 언제라도 찾아
뵙고 참배하고 추모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라고 했었다. 그런데 올해 아버님 기일은 일요일,
희한하게 우리 가족들의 직업이 평범하지 않으며
좀 특이하다. 휴일인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하는
직업을 가진 가족들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음이다.
우리 막내 여동생이 지금껏 큰 역할을 해오고 있다.
맏이이요, 큰오빠인 촌부의 역할을 대신해 도맡아
해왔다. 늘 고마운 마음이긴 하지만 제대로 표현도
못한다. 띠동갑인 막내아우는 오히려 우리 부부를
부모님 모시듯 한다. 더 미안하고 더 면목이 없다.
어제도 그랬다. 호국원 참배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하자고 했다. 장호원의 훼미리레스토랑을 검색해
놓았다며 그곳으로 가서 맛있게 잘먹었다. 우리는
생소한 음식점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나이든 우리
건강에 좋다며 토종 흑염소 진액과 아내의 스카프,
화장품을 챙겨주었다. 우린 겨우 명이나물 장아찌
조금 전해준 것 뿐인데... 매제가 오빠 갖다주라며
중국술을 챙겼는데 오빠 술 많이 마시면 안된다고
그냥 놓고 왔다고 하여 아내는 참 잘했다고 칭찬을
했지만 촌부는 아쉬웠다. 이렇게 우리 막둥이 아우
부부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한다. 이따금씩 두둑한
봉투도 챙겨주는 참으로 고마운 아우 부부이다.
산골의 일상에서는 접하지 못한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두둑히 채웠으며 선물까지 듬뿍 받아 흐뭇한
마음, 뿌듯한 마음 가득 안고 산골집에 돌아왔다.
그랬는데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더니 눈에 들어온
자그마한 예쁜 트리 화분이 놓여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없는 동안에 처제와 이서방이 트리 화분을
만들어봤단다. 정성껏 만든 연말선물이라고 했다.
이미 현관문에 달아놓은 리스와 함께 잘 어울리는
것이었다. 함께 웃으며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