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
폭우와 강풍의 흔적
2026년 7월 16일 목요일
음력 丙午年 유월 초사흗날
오늘은 꽤 더우려나 보다.
먼산이 안보일 정도로 안개가 자욱한 걸 보니...
비가 내린 다음날 아침이라서 그런지 서늘하다.
기온은 16도, 축축하지만 청량함이라 참 좋다.
어제는 폭우와 강풍의 흔적을 정리하느라 많이
우울해 힘들었지만 오늘은 한결 마음이 가볍다.
하늘과 땅, 자연의 변화에 기대어 농사를 짓지만
그 이면에는 자연의. 변화로 인한 우려와 흔적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아픔과 고통, 쓰라림도 있다.
전날 폭우와 돌풍으로 변한 강풍의 흔적, 농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이다. 초봄부터 지금까지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했다.
자연의 변화는 한순간에 농부에게 고통을 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우리네 삶엔 기쁨이 있는가
하면 아픔도 있고 고통도 슬픔도 있는 것 아닌가?
기쁨과 즐거움은 누리면 되는 것이고, 그 반면에
아픔, 고통, 슬픔은 감내하며 극복하여 더 단단해
지라고 하는 것이겠지 하며 마음을 추스린다.
전날 폭우와 강풍의 돌풍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농부라고 자칭하는 촌부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고
몸을 힘들게 했다. 큰 농사가 아닌 촌부는 그나마
괜찮지만 주업으로 하는 농사의 농부님들은 꽤나
마음 많이 아플 듯하다. 자연현상이라서 그러려니
해야겠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것인가?
어제는 식물원에 나가는 날이라서 이른 아침 잠시
밭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오이, 노각 그 튼튼한 지지대가 기우려져 있었고,
방울토마토는 지지대에 줄기를 고정시켜놓았는데
아예 몽땅 쏟아져 내려 땅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뿐인가? 우리의 유일한 파는 농사의 주인공인
옥수수는 밭고랑에 쓰러지고 자빠지고 널부러져
마치 난장판처럼 아수라장이 된 광경 그대로였다.
식물원에 나가야하니 속상한 마음을 감추고 일을
다녀와 수습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오후, 무더위를 무릅쓰고 밭에 나갔다.
먼저 줄기째 와르르 쏟아져 내려 바닥에 널부러져
있는 방울토마토 수습부터 하기로 했다. 재활용의
쇠막대기를 지지대 중간중간 세워놓고 고추끈으로
쇠막대기와 지지대를 한 줄로 이어놓고 피복밴드로
고정을 시켰다. 쏟아진 줄기는 다행히 손상이 없어
조심조심 지지대에 끌어올려 고정을 시켰다. 지금
한창 첫 번째 화방에 열린 방울토마토가 익어가고
있어 수확을 하고 있는데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우리 부부의 여름날에 건강을 책임지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방울토마토인데 말이다.
그다음은 기우려져 금방이라도 쓰러질듯한 오이,
노각 지지대를 똑바로 세우는 작업을 궁리했다.
자잘한 돌멩이를 주워다 쓰러지는 방향쪽에 놓고
망치로 때려 박아놓았다. 주변에 다 돌을 박았다.
흔들봤지만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단단해 보였다.
아마도 장마철이라 잦은 비에 지반이 약해지면서
커다란 노각, 주렁주렁 매달린 오이, 물기 머금은
잎파리와 줄기의 무게를 못이겨 쓰러진 모양이다.
노각과 오이는 지금이 한창이다. 벌써 꽤나 많은
수확을 하여 올해 노각, 오이 농사는 성공작이다.
그런데 지지대가 쓰러지게 된다면 그물망을 감고
타고오른 넝쿨은 물론이고 열어있는 노각, 오이가
못쓰게 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또한 천만다행이다.
큰 문제는 옥수수였다. 어느 정도 쓰러진 옥수수는
스스로 일어나지만 이 정도의 쓰러짐은 그럴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어찌나 온사방 무분별하게 쓰러져
있는지 엄두가 안났다. 섣불리 건드려 안하니만도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밭가에 서서 마냥 걱정을
하며 서있었다. 옥수수는 키가 크고 잎이 예리하게
날카로워 자칫 잘못하면 얼굴이나 목, 팔을 베이게
된다. 무덥기는 했지만 안전을 위해 우의를 입었다.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이내 온몸이 땀범벅이 되어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걱정스런 모습으로 아내가
나와 고생해서 어쩌냐?, 옥수수는 괜찮을 것 같냐?
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는 촌부를 안스럽다는
듯이 바라보고 서있었다. 괜찮으니 들어가라 했다.
긴 일곱 이랑이라 제대로 서있는 옥수수 부근에서
한 그루 한 그루 일으켜 세워 장화신은 발로 다지
듯이 꾹꾹 밟았더니 똑바로 서있는 것이었다. 혹시
안서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었다. 쓰러진 옥수수
그루 수는 상당했다. 개중에는 꺾어져 손상된 것이
몇 그루가 있었지만 그나마 대부분 세워놓아 힘은
들었지만 다행이구나 싶다.
땀범벅이 된 후줄근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왔더니
아내가 더덕, 헛깨나무, 엄나무, 오가피나무 등을
넣고 닭백숙을 푸욱 고아놓았으니 어서 씻고와서
맛있게 먹으라고 했다. 초복이라 마을 노인회에서
점심에 인근 음식점에서 삼계탕 회식을 했었지만
식물원 일나가는 날이라서 참석을 못했다. 아내는
처제와 함께 다녀왔지만 일 때문에 못간 촌부가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그래서 집에서 복달임을
준비했단다. 고맙고 감사하다. 어쩐지 학교 다녀온
뒤에 더덕 몇 뿌리 캐달라고 하더니... 닭고기를 잘
안먹는 아내는 생더덕무침과 노각무침으로 쓱쓱
비벼 먹고 촌부는 아내의 정성 가득 담긴 닭백숙을
복달임으로 맛있게 먹었다. 폭우와 돌풍과 강풍의
흔적도 온전히 복구하고 어깨 염증 환부도 나아서
아내가 해준 닭백숙과 함께 소맥도 한잔하여 몸은
힘들어도 대신 마음은 뿌듯하고 흐뭇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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