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역시 산은 좋은 곳이야!
10월 21일, 음력 구월 스무사흗날
겨울 채비 땔감나무를 준비한답시고 닷새쯤 가까이를
죽데기와 씨름을 하느라 참 여유없이 지냈던 것 같다.
모처럼 아침에 뒷산에 올랐다. 역시 산은 좋은 곳이며
숲은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묘한 마력을 지닌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모르지만 촌부에게 있어 산과
숲은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길러주는 삶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자면,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찬 넓고 큰 원기"라고 하고
"거침없이 넓고 큰 기개"라고 정의하는 사자성어인데
다시 말해 "세상에 꺼릴 것이 없는 크고 넓은 도덕적
용기"를 호연지기(浩然之氣)라고 하는 것이겠지.
주로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 혼자 터벅터벅 뒷산을
오른다. 요즘에는 해가 짧아지고 동절기로 접어드는
시기라서 자주 오르지는 못한다. 쉬는 날이 아니면
이런 산행은 할 수가 없다. 지금부터 내년 봄까지는
매일 다닐 수가 없어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래도
틈이 나는대로 올라가는 것이 어딘가? 산이 좋아서
산골짜기에 살다보니 이런 호사도 누릴 수가 있으니
내게 주어진 복이라고 여기고 내게 주어진 행운이라
여기며 오르내린다. 호연지기를 누리면서 말이다.
집에서 나와 둘째네 옆쪽의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로 촌부가 19년이란 세월을 걸어다녀 생긴 나만의
작은 오솔길이 나온다. 나지막한 산기슭에 있는 숲속
오솔길은 정겹다. 그렇게 걷다보면 작은 도랑도 있고
언덕도 오르고 골짜기를 지나 조금 오르면 꽤나 넓게
우거진 잣나무숲이 나온다. 그곳에만 가면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 들고, 녹색의 잎은 눈을 맑게 해주는
것 같으며, 향긋한 내음은 코를 즐겁게 하는 것 같다.
바로 이런 느낌, 이런 효과는 우거진 숲속의 나무들이
내뿜는다는 피톤치드(phytoncide) 때문이리라!
그때까진 아무런 생각없이 걷는다. 촌부의 무념적인
생각을 깨우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엄청 높고 키 큰
잣나무 위에서 청설모라는 녀석이 잣송이를 따느라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난 것이다. 그러다 이내 툭하고
잣송이가 풀섶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난다. 걷다말고
걸음을 멈춘 상태에서 소리의 근원지를 찾은 다음에
그쪽으로 가보면 바로 풀섶에 잣송이가 눈에 들어와
혼자 미소를 짓는다. 청설모가 생각하기엔 이럴 것만
같다. "사악한 인간의 모습이네!"라고... 어쩌겠는가?
촌부는 저 높은 잣나무를 오를 수가 없으니 청설모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견물생심(見物生心)이 동했다.
이내 사방팔방, 이곳저곳, 이리저리 풀섶을 뒤지면서
잣송이 줍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시간이 꽤
지났는데 잣송이는 생각보다 많지않다. 하기사 이젠
거의 끝물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청설모 덕분에 또
적잖은 잣송이를 강탈하였다. 호연지기를 기른다며
올라갔던 산과 숲에서 견물생심을 지니고 내려왔다.
운동도 하고 잣송이도 줍고 일거양득이라고 하면서
한 마디 중얼거린다. "역시 산은 좋은 곳이야!"라고...
그러고보니 촌부도 어쩔 수 없는 속물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