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난로, 장작, 신문지빵 그리고 옛 생각
2월 24일, 음력 庚子年 이월 초하룻날
평소보다 다소 늦은 기상을 한 아침, 바깥을 내다보니
지붕위에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았다. 기온은 그다지
떨어지지는 않은 영하 5도에 머물지만 꽤 쌀쌀하다.
여느 날에 비해 늦긴 했지만 난롯불부터 지펴야겠지
싶었다. 난로란 녀석이 마치 밤새 배가 고팠다는 듯이
주인장 촌부더러 빨리 신문지빵과 마른 장작을 먹게
해달라고 재촉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 실컷 잘
먹게 해주마!" 하고 어젯밤 아내가 만들어 놓은 여섯
개의 신문지빵을 밑에 깔고 불쏘개 나무를 얹었놓고
마른 장작을 가득 채운 다음에 토치로 불을 붙였다.
이내 불꽃이 활활, 열기로 따뜻했다. 탁탁거리면서
타는 소리가 좋고, 장작타는 냄새와 자스민 꽃내음이
어우러져 거실은 자연의 향기로 가득하여 너무 좋다.
늦었지만 쉬는 날 월요일 아침은 이렇게 시작했다.
월요일이다. 거의 대부분 남들은 한 주일을 시작하는
날이지만 촌부의 월요일은 한 주일을 마무리하고 난
뒤에 쉬는 날인 휴일이다. 모두가 주5일 근무를 하고
토, 일요일 이틀을 쉬지만 촌부가 일하는 곳은 업종이
레저와 관련된 서비스업이라서 주말에는 쉴 수 없다.
6일을 일하고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씩 교대로
쉬게 되는 것이다. 예전 광고회사에 근무하던 시절은
다른 여느 회사보다 주5일 근무를 빨리 시행했다. 그
기억이 새롭다. 1988년에 시행을 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체에 주5일 근무제도를 도입해
전면 시행된 것은 참여정부 시절 2004년 7월 1일인
것으로 기억을 하는데 그 보다 16년이나 빨리 시행을
했으니까 당시에는 앞서가는 자랑스러운 회사였다.
남들의 부러움을 샀지만 토요일은 딱히 할 일이 없어
집에서 몇 km 떨어진 시골에 주말농장을 계약하여
텃밭농사를 지으며 전원생활 준비를 했던 그 시절이
새삼 기억이 나는 아침이다. 그때 농사를 지은 채소를
아파트 이웃들과 나누었는데... 그래서 인기도 참으로
많았었다. 촌부와 아내가 주말농장에 다녀와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면 다들 소쿠리를 들고 와서 싱싱한
채소를 나눠가며 얼마나 좋아했었는지 모른다. 정말
오래된 추억의 한 장면이다.
요즘 코로나19로 온나라가 난리 그 이상으로 심각한
날이 이어지고 있다. 감염병 위기 경보는 관심, 주의,
경계, 심각의 4개 단계로 구분을 한다고 한다. 어제는
정부에서 최고 수준이라 할 수 있는 심각단계로 격상
하여 발표했다. 그 발표를 듣는 순간, 대구와 경북에
사는 이들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영주에 사는 막내네,
봉화에 계시는 오선배님과 형수님 또한 대구에 살고
있는 아내의 절친 이여사님 내외, 엄작가님과 오래전
해태제과와 광고회사에서 함께 근무하며 우정을 쌓은
채환兄이 생각난 것이다. 막내네와 이여사님은 거의
매일 아내와 카톡이나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고 있고,
또한 오선배님과 엄작가님도 SNS로 매일 소통하고
있어서 안심이지만 SNS를 하지않는 대구 채환兄의
소식이 궁금했다. 전화를 했지만 연결이 되지않았다.
얼마후에 전화가 왔다. 어쩌냐고 하니 괜찮다고 하여
그제서야 안심이 되었다. 한 살 위의 兄이지만 오래된
친구다. 대구는 도심 전체가 너무 썰렁한 분위기라고
하며 산골에 살고 있는 이 촌부가 부럽다나 뭐라나?
이 사태가 진정되고 나면 그 옛날 자주 들렸던 것처럼
촌부네에 와서 술 한잔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그리고
통화를 하면 늘 그랬듯이 옛날을 추억하곤 한다. 요즘
장대표는 자주 만나느냐, 누구누구는 연락하느냐, 또
함께 근무했던 이들의 소식은 듣고 사느냐 등등...
촌부보다도 서울에서 더 멀리 살다보니 많이 외로운
듯하다. 하루빨리 사태가 진정되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오늘은 또 원주에 다녀와야 한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