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또 한 친구가 갔단다!
2월 9일, 음력 庚子年 정월 열엿샛날
아침 기온 영하 15도, 하루 사이에 또 곤두박질이다.
그래도 오후부터는 풀린다고 하니까 다행이긴 하다.
어젯밤 휘영청 밝은 정월대보름 달을 보며 이것저것
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두어 가지만 빌었다. 아내도
촌부 생각과 같았단다. 40년 세월, 아니 45년 세월을
함께 하다보니 이런 생각까지 같아지는구나 싶다.
아내는 정월대보름 절식을 한 가지 더 많들어 놓았다.
잣, 대추, 밤을 비롯한 여러가지를 넣고 약식을 만든
것이다. 야식으로 먹었는데 오랜만에 만들어 그런지
맛이 아주 좋았다. 남은 것은 한번 먹을 만큼씩 랩에
싸서 냉동실에 얼려놓아 이따금씩 야식으로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아내가 고맙다.^^
어제 저녁무렵,
고교 동기 동창회에서 부고가 왔다.
우리 5반 친구 성덕이가 세상을 떴다는 소식...
우리 반은 졸업후 지금껏 모임을 이어오고 있지만
친구 성덕이는 나오지 않아 만난 기억이 별로 없다.
오래전 언젠가 어느해 동기회 체육대회에서
부인과 함께 참석해 술 한잔을 나눈 기억 뿐이다.
70년대 중반 을지로 6가 평화시장옆의 학창시절
성덕이는 키가 많이 컸고 거무틱틱한 모습이었다.
지금 생각을 해보니 참 멋지고 잘 생긴 친구였다.
졸업후 소식이 닿지않아 모임에서는 자주 못봤는데
그 어느해 체육대회 그 만남이 마지막이었구나.
성덕아!
자네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잘 모르지만
아귀다툼의 이 세상을 어떻게 지냈는지 몰라도
학창시절 3년을 같은 공간에서 동문수학 했었고
고교 마지막 한 해를 우리 함께 했던 정이 남았는데
친구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이 훌쩍 떠나시는가?
"잘 가시게! 고통없는 곳에서 영면하시게나."라는
말로서 자네와 작별 인사를 나누게 됨을 용서하시게!
촌부의 고교시절 우리 동기는 상당히 많은 숫자였다.
15학급 900명이었으니 요즘 시대엔 상상초월이다.
3학년 5반은 제적인원이 61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45년이 지난 지금, 어느새 여섯 친구가 멀리 떠났다.
창배, 언진, 성하, 동현, 민수, 성덕이까지...
모두 하늘나라에서 극락왕생하기를 빌어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다.
"죽음앞에 두려움 없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라고...
우리들 나이도 어느듯 60대 중반이 되었고
이따금씩 친구들이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죽음이라는 단어가 머리에 떠올라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언젠가는 떠나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이지만
어떻게 보람되게 살다가 갈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는
그런 나이가 되었구나 싶어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