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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IMG_20200109_2.jpg : 촌부의 단상-겨울비가 내리던 날에...IMG_20200109_1.jpg : 촌부의 단상-겨울비가 내리던 날에...[촌부의 단상]
겨울비가 내리던 날에...

1월 9일, 음력 12월 섣달 열닷새 보름날
간만에 평온한 아침을 맞는다. 혹시나 새벽 하늘 높이
반짝이는 별을 볼 수 있을까, 둥실둥실 섣달 보름달을
보게 되려나 하며 바깥에 나갔으나 잔뜩 흐린 듯하여
볼 수가 없다. 그래도 오랜만에 상쾌한 아침이라 좋다.
사나흘 내린 겨울비에 시냇물이 많이 불었다. 이맘때
들을 수가 없는 시냇물 소리를 듣는 이른 아침은 마치
겨울을 지나 초봄이 온듯한 착각을 할 정도라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지금 기온은 영하 5도, 어젯밤까지
추적거리던 비는 그쳤으나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바닥이 살짝 얼었다. 소위 말하는 블랙 아이스 현상이
생긴 듯하다. 어제 저녁무렵 자동차를 닷새째 아래에
두고 올라온 것은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심상찮은 날씨에 잔뜩 겁을 먹은 겁쟁이 촌부는 어제
저녁무렵 자동차를 아랫쪽에 두고 올라오다가 볼상이
사나운 것을 발견하고 되돌아 내려가서 주인도 없는
아랫쪽 첫 집의 각삽을 가져다 올라오는 도로 초입에
어지럽게 널려있는 낙엽과 자갈을 다 치웠다. 사나흘
이어진 겨울비에 경사진 언덕에서 낙엽과 자갈 심지어
커다란 돌멩이까지 굴러 도로에 잔뜩 흩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랫쪽 사람들은 그냥 그 위를 밟고 자동차를
몰고 다닌 것 같다. 조금의 수고만 들인다면 위험하게
다니는 것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을텐데 말이다. 정말
너무들 하는 처사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반시간 가량
치웠다. 깔끔하게 치워 나름 잘했구나 싶었지만 마음
한 켠에는 자기들 집앞 도로의 눈도 안치우는 인간들
위해 이런 봉사를 하는 것이 못마땅한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옛말을 되새기며 남들
위하고 나를 위한 촌부의 자그마한 배려라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집에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온다는
사람이 오지않으니 아내는 걱정이 되었는지 뭘 하느라
아직이냐며 전화를 했다. 이러쿵저러쿵, 이렇고저래서
지금 올라가고 있다 하니 "참 잘했어요. 복 받을기요"
라며 어서 오라고 했다. 겨울이지만 이슬비 맞으면서
삽질을 했더니 비에 땀에 범벅이 되어 온 남편 몰골을
보고는 어서 씻고 오란다. 저녁밥상은 수육을 삶아서
알배추쌈, 묵은지, 김장김치소와 함께 차려놓았다. 
엊그제 장에 나갔을때 정육점에 들리더니 고기를 좀
사왔던 모양이다. 언젠가 TV에서 연예인이 수육을
배추잎으로 싸서 먹는 것을 보다가 "아따! 맛있겄네!"
라고 했었던 촌부의 말이 생각나서 준비를 했단다. 
볼테기가 미어지게 먹는 촌부의 모습을 보며 아내는
흐뭇해 하였다. 잘 먹고나서 따뜻한 난롯불을 벗삼아
쇼파에 드러누워 요즘 만화책 삼매경에 빠져 읽고있는
고우영 화백의 중국역사 만화 "十八史略"을 읽다가
그만 잠이 들었다. 따뜻한 난롯불에, 아내의 정성스런
수육 보쌈에 술도 한잔 걸쳤고, 올라오면서 삽질까지
했으니 노곤하여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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