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간만에...
12월 24일, 음력 11월 동짓달 스무여드렛날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라고 젊은이들은 난리겠지?
아침 기온이 영하 9도까지 떨어졌다. 어제 저녁무렵
흩날리던 눈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았다. 자동차를 내려
놓는 호들갑을 떨었으니 그 댓가로 아침 산책을 하게
되었다. 안전이 으뜸이라 여기며 걸어 내려가야겠다.
간만에
눈다운 눈이 내렸던 어제는 하루가 짧았던 것 같다.
쉬는 날이라서 난롯불을 지펴놓고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와 둘이서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진한 커피를
마시면서 설경을 감상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겨울날 이런 여유를 즐겨보는 것도 꽤나 오랜만이다.
살면서 무엇이 그렇게 바쁘다고 허겁지겁, 허둥지둥
하면서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직 일을 하고 있어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는 것이 사치였던 것일까?
하긴
우리에게 이런 사치스런 시간이 제대로 주어질까?
그 여유로움도 잠시 눈이 내리면 꼭 해야하는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빗자루와 넉가래가 현관앞에
지키고 서서 어서 나오라고 채근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내는 모처럼 함께 눈을 치우게 되어 다행이라면서
힘들어도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이 넓은 단지의 통로와 주차장, 진입로의 눈을 혼자서
치웠으니 그럴 수밖에... 눈이 내리면 늘 안타까웠다.
눈과 싸움을 하기 위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섰다.
우선 아내는 카페앞 눈속에 생수병을 묻다시피 하게
꽂아놓았다. 자연 냉장고랄까 천연 냉장고라고 할까?
드디어
올겨울 제대로 된 눈과의 싸움이 시작된 어제였다.
산골 부부는 보무도 당당하게 바닥에 잔뜩 쌓인 눈을
치우기 위해 넉가래질을 시작했다. 우선 진입로부터
아랫쪽으로 밀고 내려갔다. 오랜 세월 눈을 치웠기에
나름의 요령이 있다. 우선 가운데를 밀어 길은 터놓고
그 다음 양쪽을 치우는 것이 훨씬 쉽고 힘이 덜 든다.
촌부가 쭈욱 밀고 내려가는데 그만 넉가래 자루가 뚝
부러지고 말았다. 너무 욕심을 냈던 것이다. 이런 걸
두고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했던가? 다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며 걱정해주는 아내가 고맙다.
그렇게 저렇게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며 눈을 치웠다.
긴 진입로, 넓은 주차장, 울퉁불퉁한 중앙통로까지...
그나마 가벼운 눈이라 한시간 반만에 끝낼 수 있었다.
모처럼 눈과의 한판 승부를 겨루느라 온몸은 땀범벅,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나니 배가 무척 고팠다.
이러다가
어제 있었던 일을 다 옮기려면 한도 끝도 없겠는걸!
간단 명료하게 쓰자. 뭐 그렇게 대단한 것도 아닌데...
어제는 기가 믹히게 가는 순서대로 시간이 딱딱 맞아
떨어지는지 아내도 촌부도 놀라울 지경이었다.
-12시 20분 집에서 진부로 숨은 맛집 찾아 출발
-12시 50분 바우 짬뽕집 도착. 짬뽕과 짜장곱배기
역시 맛이 일품이다. 맛집 맞다, 맞아!
-13시 20분 식사 완료, 아내가 영화 한 편을 보자고
하여 평창시네마가 있는 장평으로 출발
-13시 45분 평창시네마 도착, 기가 막힌다. 55분에
상영 시작이란다. 요즘 화제작이라서
그런지 앞뒤로 떨어진 좌석 뿐이란다.
서로 떨어져 앉아 <백두산>을 보았다.
그런대로 흥미진진하여 재미있게 봤다.
-16시 05분 영화관을 나왔는데 아내가 장을 보잖다.
봉평으로 출발해 농협에서 공과금 납부,
채소가게와 농협마트에 들려 장을 봤다.
-16시 50분 머리가 길어 새해맞이 이발을 할까하고
미용실에 전화했더니 20분 후에 오란다.
-17시 10분 아내를 집에 내려주고 미용실에 도착해
깔끔하고 단정하게 흰머리를 잘랐다.
-17시 50분 집에 도착했는데 또 눈발이 흩날렸다.
스마트폰으로 날씨를 검색해보니 밤에
눈이 예보되어 자동차를 몰고 아랫쪽에
내려다놓고 눈을 맞으며 걸어 올라왔다.
-18시 10분 그새 아내는 난롯불을 지펴놓고 저녁을
준비해놓았다. 얼큰한 우거지갈비탕을
어찌나 맛있게 끓였는지 맥주 한 캔을
곁들여 한 뚝배기를 뚝딱 해치웠다.
허허~ 간단하게 쓴다는 것이 그래도 많이 길어졌네.
하지만 어제 하루는 아내와 함께하며 간만에 보람도
있었고 즐겁고 알차게 보낸 것 같아 뿌듯하고 흐믓한
날이었구나 싶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식사후 이내
피곤이 엄습해 비몽사몽하다 커피잔을 쏟는 바람에
스마트폰의 충전구에 물기가 스며들어 드라이기로
말리느라 한참을 고생했다. 저녁에 잠들기 전 아내가
하는 말, "당신은 쉬는 날이 더 바빠서 어떡해?"라고
하여 "이것도 나에게 주어진 복이 아닐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