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진풍경
12월 7일, 음력 11월 동짓달 열하룻날, 대설(大雪)
오늘은 24절기 중에 스물한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로
일년 중에 눈이 가장 많이 내린다고 하는 뜻을 가진
대설(大雪)이다. 하지만 대설이라고 하여 이 무렵에
눈이 많이 내리는 건 아닌 것 같다. 중국에서 유래된
절기는 중국 화북지방을 기준으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기후와 딱 들어맞는 것은 아닌 것
으로 알고 있다. 그저 이 무렵엔 이런 절기가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리라.
그런데 12월 초순에 들어서면서 이 산골에도 매서운
추위가 몰려왔다. 어제는 올겨울들어 가장 춥고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였으니 대설 추위라고 해야겠지?
도시에 살던 때는 해보지도 않았고 할 필요도 없었던
일인데 이 산골에 살면서 겨울이면 꼭 하고 있는, 꼭
해야 하는 것이 있다. 자동차에 덮개를 씌우는 일이다.
아침에 일을 나가려면 자동차 유리가 꽁꽁 얼어붙어
긁어야 한다. 그런 것을 방지하려면 미리 전날 저녁에
덮개를 씌워야 놓아야 하는 것이다. 꽤 오래전 친구가
부드러운 비닐로 된 자동차 덮개를 보내주어 잘 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늦가을이나 초겨울에 사용한다.
이곳 산골은 워낙 추운 지방이라서 요즘과 같이 추운
한겨울엔 그 덮개까지 같이 얼어붙어 버리기 때문에
촌부는 아예 안쓰는 모포로 앞유리와 본넷을 덮는다.
그러니까 우리 자동차는 겨울이 되면 밤마다 이불을
덮고있는 자동차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건
그리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겨울날 산골에서나 보게
되는 진풍경이라고나 할까?
진풍경이라는 말이 나온 김에 한가지 더, 어젯밤에는
산골집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아닌 것이 눈에 띄었다.
간만에 막내 처제 부부가 전날 왔고 어제 저녁무렵엔
조카 딸내미가 산골집에 와서 장모님을 모시고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각자의 집으로 간 후에 벗어놓고 간
겨울용 실내화가 거실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모습이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이색적으로 보였다. 무엇이든지
좀 색다르다 싶으면 순간적으로 사진을 찍는 버릇이
있는 촌부라서 한 컷 찍었다. 이 또한 진풍경이겠지?
평소에는 우리 부부가 신는 두 켤레에 장모님이 신는
것까지 합치면 세 켤레가 놓여있는데 몇 켤레가 더
놓여있는 것이 재미있고 흐믓하고 좋았던 것이다.
장모님과 함께 식사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늘 아내와
둘이 식탁이 아닌 주방의 아일랜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 어제처럼 식구들이 오면 그때서야 식탁에 모여
식사를 하곤 한다. 늘 둘이서 식사를 하다가 식구들이
모여 식사를 하다보니 기분도 좋고 밥맛도 좋아 벌써
이틀째 과식을 했다. 평소 소식(小食)을 하던 사람이
식구들이 왔다고 하여 밥도, 술도 너무 많이 먹는다며
걱정스러워 하는 아내에게 촌부는 이렇게 말을 했다.
"이 사람아! 이런 날이 얼마나 자주 있노? 이럴 때는
과식해도 탈이 없는기라! 너무 뭐라카지 말거래이!"
하긴 어제 저녁식사의 경우는 아내가 끓인 부대찌개,
막네 처제가 담가온 총각김치, 우리 김장 배추김치와
고들빼기 김치에 닭강정까지 있었으니 촌부가 즐기는
밥도둑, 술도둑인지라 때를 놓치지않고 잔뜩 먹어서
아내가 그랬던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큰 이모가
좋아하는 빵이라고 하여 조카 딸내미가 선물로 사온
티라미수 케익에 유자차까지 후식으로 먹었으니...
그 바람에 어젯밤에는 평소 즐기는 야식은 생략했다.
오늘 아침은 어제 아침에 비해 기온이 많이 올라갔다.
영하 9도, 그런데 예보에도 없던 눈이 펄펄 내린다.
절기상 대설(大雪)이라고 절기값을 하려는 것인가?
이런 경우는 겨울날에 종종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촌부가 이상하다고 해본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하늘의 뜻인걸... 오후에 서울을
가려면 아예 안전하게 자동차를 내려놓고 오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겠냐는 아내의 말에 그러는 것이 좋긴
하겠다는 생각에 내려놓고 눈을 맞으며 걸어서 올라
왔다. 아침 운동을 하라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 또한 산골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라
해야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