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내가 살던 고향과 내가 사는 산골은...
12월 6일, 음력 11월 동짓달 열흘날
오늘 아침은 올겨울 들어 가장 낮은 기온을 기록하여
가장 추운 날이다. 영하 19도, 기온상으론 꽤 대단한
추위라고 해야 하겠지만 바람이 없고 잠잠하여 그런지
기온에 걸맞는 추위는 아닌 것 같다. 다행스런 일이다.
하지만 춥긴 춥다. 바깥 장작집에 불쏘시개를 가지러
나갔더니 잠깐새 코가 찡하고 손끝이 시려워서 후다닥
들어왔으니 말이다. 이제 제대로 된 겨울 속으로 빠져
드는 그런 느낌이 든다. 오늘처럼 추운 날에는 따뜻한
정(情)을 화두로 촌부의 단상을 채워볼까 한다.
내가 살던 고향은...
흔히들 요즘은 옛날에 비해 너무 각박한 세상이라고
말을 하곤 한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 거의
과거 6.25 사변이후 태어나 못먹고 못살던 빈곤했던
그 시대를 겪어왔던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이 촌부도
역시 50년대 중반 멀리 남쪽 바다의 섬에서 태어나
12년을 깡촌의 촌놈으로 살다가 부모님을 따라 너무
낯선 서울로 유학(?)을 하게 되어 졸지에 꽤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서울놈이 되어 33년을 살았다.
그 기간 동안에 느낀 것은 바로 "참으로 서울 생활이
각박하구나!"싶었다. 아마 그런 생활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고향이 많이 그리웠고 지금껏 고향 남해를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촌부처럼
고향을 잊지못하는 마음을 두고 수구초심(首丘初心)
이라고 하는 옛말이 생긴 것은 아닐까?
촌부의 어린 시절에는 그야말로 정이 철철 넘쳐흐르는
그런 마을에서 자랐다. 기억하기로 당시에 67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사는 그다지 크지않은 마을이었다. 꽤
큰 섬에 속하는 곳이지만 우리 마을은 바다와는 조금
떨어진 마을이다. 근동의 8개 마을이 같은 학구였고
그 중에 우리 마을은 산밑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웃골"이라고 부르곤 했다. 글로 표현해 그렇지 실제
당시 어른들이 말하시던 그 소리를 그대로 옮겨보게
되면 "웃굴"이라고 적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긴 하지만
마을을 칭할 때는 '굴'이 아니고 '골'이 맞는 것인데...
하여간 가끔씩 다녀오는 고향이지만 지금도 남다른
정(情)이 남아있는 정겨운 마을이다.
내가 사는 산골은...
6~70년대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정(情)이 얼마나
아름답고 좋은 것이며, 우리들이 살아가는 일상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그런 것인가를 잘 모르는 건 아닐까?
산업이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특히 예전과 달리
핵가족 시대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예전처럼 가족간에,
친척간에, 친구간에, 동료간에, 이웃간에, 지인들간에
정이 많이 결여됨은 이 촌부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또한 이기적인 풍조가 우리 사회의 전반에 팽배하여
너 나 할 것 없이 배려심은 온데간데 없고 더불어 사는
모습 또한 보기가 드물며 다들 제 밥그릇을 챙기느라
혈안되고 있는 이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고 안스럽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닐테지만...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이기적으로 변해간다고 하여도
다 그런 건 아니다. 촌부가 살고 있는 이 산골 마을은
그나마 아직까지 소박한 정이 남아있는 곳이라서 좋다.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예를 들어보자!
밭에서 수확을 하시던 마을 어르신께서 전화를 하여
"이氏! 우리 밭에 좀 내려와! 감자 좀 갖다먹어!"라고
한다. 또 마을 아우는 "형! 내려와 무우 좀 가져가요!"
라고 하여 자동차를 타고 밭으로 가보면 밭가에는 큰
마대 부대에 감자, 무우가 한가득 들어있다. 이건 그저
나눠주는 정도가 아니다. 엄청난 양이다. 애써 농사를
지은 것인데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떡하냐고 해도 그냥
가져가 맛있게 먹으면 그것으로 된다면서 웃어넘긴다.
어느 해인가는 브로콜리와 양배추를 얼마나 많은 양을
주었는지 우리가 다 먹을 수가 없어 도시에 있는 형제,
친구, 지인들에게 나눠 보내주느라 택배비를 꽤 많이
지출했던 적이 있다. 나눔을 받아 나눔을 했던 보람된
기억이다. 아무리 정이 많아 나눔을 한다지만 그렇게
많은 양을 거리낌없이 나눠주는 건 요즘같은 시대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거꾸로 촌부가
농사를 짓는 농부였다면 이웃에게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결코 그것이
쉬운 일은 아닐테니까 말이다. 이런 나눔은 정(情)이
없이는 어려울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 분들은
타고난 천성이 착한 정을 가진 것이고 살아오는 동안
서로 돕고 사는 것이 몸에 배어 있는 많은 정을 지닌
그런 분들이라고 생각을 한다. 이 촌부는 그 분들에게
많은 정을 느끼고 있으며 또한 그 분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면서 지금껏 19년째 산골살이를 하고 있다.
참, 어젯밤 산골집에 다니러온 막내네 얘기를 빠뜨릴
뻔했네. 영주에서 사괴농장을 하는 막내처제 부부가
산골집에서 고추장을 담근다며 왔다. 온다는 소식에
아내는 저녁을 준비했다. 갑작스레 온다고 하여 뭐
별다른 음식을 만들 수 없었다며 새송이 버섯을 구워
잣소금을 뿌린 것과 보글보글 순두부 찌개를 끓였다.
그리고 김장 김치와 고들빼기 김치 이게 전부인 완전
시골밥상으로... 막내네가 오면서 닭강정을 사왔는데
연로하신 장모님께서 맛있게 드셔서 보기가 좋았다.
없는 반찬이지만 맛있게 먹어준 막내처제와 동서와
모처럼 함께하는 식사 자리가 너무 좋아 이 촌부는 또
소주 반병을 맛나게 들이켰다. 식사 준비를 한 아내는
변변찮은 식사라며 미안해 했지만 흐믓해 하는 것이
보여 또한 즐거웠다. 서로 멀리 살다보니 이런 자리가
드물어 늘 많이 아쉬운 산골 부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