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차(茶)나무에 대한 추억
11월 11일, 음력 시월 열닷새 보름날
간밤에 이슬비가 조금 내리다가 그치더니 둥실한 음력
시월 보름달이 떠있는 것을 보고 잠에 들었다. 그런데
이른 아침 지붕 물받이를 타고 뚝뚝 떨어지는 낙숫물
소리에 잠을 깼다. 일어나 바깥에 나갔더니 가랑비가
추적거리고 있다. 그다지 많이 내리지는 않은 듯하다.
땅바닥이 촉촉하게 젖을 만큼이랄까? 다행히 기온은
어제 아침의 영하에서 오늘 아침은 영상을 회복했다.
이맘때 밤에 비가 내리고 이른 아침에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게 되면 길바닥이 얼어붙어 낭패스럽기도 하여
촌부는 이맘때 내리는 비를 무척 싫어한다. 이제 비가
그치고나면 본격적인 추위가 시작되려나? "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 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이 시기에
내리는 비는 그치고나면 꼭 찬공기가 몰려오고 추워
지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러려니 해야지 뭐...
1층과 2층 거실 창가에는 아내가 정성들여서 기르는
화초들이 꽤 많이 있다.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 내내
끊임없이 예쁘고 아름다운 꽃이 피고 녹색 푸르름으로
우리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기도 하고 즐겁게 하며,
저마다 간직한 향긋한 내음으로 실내를 쾌적하게 한다.
쟈스민, 치자나무, 군자란, 수국, 산호수, 인삼벤자민,
카랑코에, 스파티필럼, 차나무 外 몇 종류가 더 있다.
그 중에 이맘때 피는 꽃이 있다. 바로 차(茶)나무 꽃이
그 주인공이다. 많이 피지는 않지만 그래도 11년 동안
산골집 거실에서 함께하여 뭔가는 모르지만 정이 많이
가는 나무이다. 그래서인지 꽃내음도 향긋하고 좋다.
이 차나무가 산골집 거실에서 자라게 된 것이 어느새
11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우리집에 오게 된 사연을
더듬어 보자. 2008년 10월 이맘때 쯤에 산골가족이
지리산을 거쳐서 남도여행을 갔을 때 보성녹차원에서
당시 중학교 2학년었던 조카 딸내미가 여행기념으로
한 집에 한 그루씩을 사주었던 어린 차나무 묘목이다.
그런데 네 집 중 지금껏 잘 길러 꽃을 피우게 된 집은
우리집 뿐이다. 예전 도시에 살던 때도 아내는 화초를
잘 길렀다. 내부 환경조건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보다
식물은 정성을 들여야만 잘 자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내는 그 당시부터 지금껏 물을 주거나 환기를 시켜
주는 것을 일정하게 지키며 기른다. 생각컨데 그것이
집안에 있는 화초들을 잘 자라게 하고 화초들은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해마다 예쁘고 항기로운 꽃을 피워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고맙게도 그때
이 차나무 묘목을 선물한 조카 딸내미도 아주 잘 자라
지금은 임용고시를 한번에 합격하였고 졸업과 동시에
고교교사로 발령을 받아 지금은 어엿한 선생님이라서
우리 집안의 자랑스런 딸로 장성을 하였다. 해마다 이
차나무에 꽃이 피면 이 산골에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부터 오랫동안 함께했던 날들을 추억하게 된다. 이
차나무꽃의 꽃말이 '추억'인 것처럼...
식물은 꽃이 피었다 지고나면 열매가 열리고 이듬해
꽃이 필 무렵이면 열매는 떨어지고 없는 것이 대부분
식물의 한 주기, 일련의 과정이며 일반적인 형태이다.
그런데 차나무는 여느 나무와 다른 특이한 점이 있다.
꽃과 열매가 1년 만에 만난다는 것이다. 현재의 꽃과
과거의 꽃에서 비롯된 열매가 같은 시기에 한 나무에
달리는 것인데 이런 나무를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
라고 한다. 이런 걸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식물의 세계는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할 뿐만
아니라 기이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와는 달리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못하는 특이한 형태의 꽃무릇 같은
상사화도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