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자급자족을 실현한 고추농사!
10월 25일, 음력 구월 스무이렛날
어제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이자 24절기 중에 열여덟
번째인 상강(霜降)이었다. 말 그대로 서리가 내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며, 가을이 무르익어 단풍이 절정에
이르고 가을을 대표하는 꽃 국화가 만개하는 시기로
이제는 계절이 늦가을로 접어들게 된다. 농촌에서는
무척이나 바쁜 시기이다. 한해의 농사를 마무리하는
추수를 해야하고, 더 추워지기전에 논밭의 설거지도
해놓아야 한다. 그래도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 바로
이 계절, 가을이 아닌가 싶다.
밭에는 아직 베지않은 콩이 잘 영글어 익어가고 있다.
가을 채소는 우리 부부가 정성을 다한 덕분인지 아님
하늘의 도움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그맣게 오무리면서
결구가 되어가고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노란 고갱이
모습이 살짝 보인다. 비록 전문가인 농부님들이 지은
배추보다 튼실하게 통이 크지는 않지만 우리가 손수
지은 것이라서 보람은 더 크게 다가온다. 그뿐인가?
무우도 꽤 튼실하게 잘 자라고 있다. 지난해 실패했던
무우농사라서 올해는 나름 신경을 곤두세우고 정성을
다했다. 무우 또한 시중에 파는 것과는 비교가 안된다.
우리는 거름과 비료를 많이 넣거나 농약을 치지않아
뿌리가 그렇게 굵고 크지는 않다. 하지만 그런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다. 우리가 정성을 다해 손수 기른 것에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뿌리에 비해서 무우청은 엄청
실하다. 지금으로 봐서는 제대로 된 무우청 시래기를
꽤 많이 말리게 될 것 같아 벌써 부터 흐믓하다. 우리
부부는 무우청 시래기로 만든 음식을 무척 좋아한다.
둘 다 촌스럽고 시골스런 입맛을 가졌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옛날에는 못사는 집에서나 먹었던
그 식재료, 시래기가 비타민이 풍부하고 영양이 좋은
것이라고 하여 요즘은 각광을 받는 것을 보니 우습다.
산골 아낙도 연일 바쁘다. 저멀리 서해안의 강경에서
주문하여 도착한 멸치젓갈과 갈치속젓을 들통에 넣고
달여서 액젓으로 만드느라 하루종일 뜨거운 불하고
씨름하는 것은 물론 젓갈을 달이면 나는 특유의 강한
냄새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이 방법은
어머님 살아 생전에 아내에게 전수하신 것이라서 늘
고생을 하면서도 어머님의 뒤를 잇는 아내 마음씨가
너무 고맙다. 이 액젓으로 맛있는 김장을 담글 것이다.
드디어 올해 고추농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고춧가루를
빻았다. 일반 고춧가루와 고추장 담글 용도로 구분해
빻았는데 색깔이 너무 곱다. 우리 손으로 기른 고추로
고춧가루를 자급자족 하겠다던 아내의 야심찬 계획은
성공을 하였다. 지금껏 우리 손으로 길러 홍고추를 따
고춧가루를 빻아 온 이래 가장 많은 양이라며 아내는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농사짓는 보람이 이런 것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해마다 고추를 기르기는 했지만
고춧가루를 빻아서 자급자족을 할 만큼은 아니었다.
지난 봄날에 약 300여 그루의 고추모종을 심으면서
아내는 이 정도면 홍고추를 따서 말리면 자급자족을
할 수가 있을 것인가 모르겠다며 반신반의를 했었다.
다행히 고추는 무럭무럭 잘 자라주었고 칼슘제 살포
외 농약을 전혀 치지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튼실하게
고추가 많이 열였다. 풋고추도 많이 따먹고 장아찌도
담그고 나눔도 꽤 많이 했다. 그리고 홍고추를 열심히
따서 말렸다. 그런데 느닷없는 가을 장마가 몰아닥쳐
고추말리기는 커다란 시련에 봉착을 했다. 다행히도
마을 아우네가 고생하지말고 따놓은 고추를 모두 다
가지고 오라고 했다. 하우스에서 말렸다가 건조기로
서서히 말리면 색깔도 곱다고 하며 요즘은 일조량이
부족하여 완전 태양초로 말리기는 쉬운 일 아니라고
했다. 태양초로 말리는 것이 쉽지않음을 실감하였다.
고마운 마을 아우네 부부에게 맛있는 밥이라도 한번
사야겠다. 아마도 아내는 빻아온 고춧가루를 우리가
먹을 만큼 남겨놓고 아우들에게 조금씩이라도 나눠
줄 모양이다. 이런 아내의 마음을 알아채고 하늘에서
도움을 주셔서 오늘의 이 농사의 보람,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어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