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한글날이면 생각나는 두 분 은사님
10월 10일, 음력 구월 열이튿날
어제는 한글날이었다. 예전에는 국경일이면 집집마다
대문에 태극기를 게양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요즘은 어떠한가? 태극기를 게양하는 집보다
게양하지않는 집이 더 많은 것 같다. 모두 다들 나라를
사랑한다고 하지만 이런 작은 것 마저도 지키지않고
무슨 애국을 한다고 말할 수가 있겠는가? 걱정이다.
세종대왕님이 즉위 25년, 서기 1443년 훈민정음을
완성하여 3년간의 시험 기간을 거쳐 1446년 세상에
선포하여 오늘날의 우리가 사용하는 한글이 되었다.
바로 세계적으로 우수한 한글을 창제하신 그 위대한
업적을 기리며 기념하는 날이 바로 오늘 한글날이다.
그런데 모두들 그저 하루 쉬는 날로 생각하고 있으니
이 또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한글날이면 생각이 나는 두 분의 은사님이 계신다.
두 분 은사님의 공통적이신 것은 우리말, 우리글을
사랑하셨던 국어 선생님이셨다. 그래서 더 두 분의
은사님을 존경하는 것이리라 여겨지는 촌부이다.
한 분은 1973년 고교시절 "우리말 지켜 쓰기회"를
만들어 전교생이 거리를 다니며 홍보를 하며 우리말,
우리글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수 있게 하셨던 분이다.
국어를 가르쳐 주셨던 이경복 선생님이시다. 졸업후
담임 선생님이 아니셔서 선생님의 근황을 몰랐으나
최근 몇몇 친구들의 주선으로 선생님을 뵙게 되었다.
당시의 홍보용 전단을 지금껏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
드렸더니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모른다. 47년이 지난
지금껏 이 전단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은 촌부뿐이다.
보관하고 있던 두 장 중 한 장은 모교 덕수 100주년
기념관에 촌부 이름으로 기증되어 전시가 되고 있다.
평생동안 후진 양성을 위해 몸담아 오셨던 교육계를
은퇴하시고 지금은 서울에서 그리 멀잖은 시골에서
농장을 운영하시고 계시는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
지금도 매일 아침 6시 45분쯤이 되면 그날의 화두로
글과 사진을 카톡으로 보내주시는 선생님이시라서
더욱 더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4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껏 제자 사랑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시고 계신
선생님의 열정과 열의는 제자인 우리들이 본받아야
하는 것이라고 늘 생각을 하지만 제대로 따르지 못할
뿐더러 팔순을 바라보시는 연세인데도 불구하고 젊은
제자들보다 번뜩이는 지혜는 가히 상상 초월이시다.
지난번 광화문 뒷골목 선술집에서 막걸리와 소주와
선생님께서 손수 담그신 담금주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그런 시간을 자주 갖자고 했다. 그렇게 만나뵙겠다는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사정으로 찾아가
뵙지못해 송구스럽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또 한 분은 '한글문학회'를 결성해 돌아가시기 전까지
문학활동을 하셨던 시인이시며 수필가이셨고 모교의
2부에서 국어선생님이셨던 故 안장현 선생님이시다.
학창시절 직접 수업을 받은 적은 없으나 댁이 청운동
이셨고 촌부는 세검정 부암동이어서 통학을 하면서
시내버스에서 만난 인연으로 개인적인 문학 교육을
받았다. 그 인연으로 결혼식 주례를 서 주셨던 분이다.
결혼 후에도 아들녀석이 유치원을 다닐때까지 한동안
찾아뵙고 사모님과 함께 식사도 하곤 했다. 선생님이
주관하시는 한글문학회 모임에도 불러주셔서 다니곤
했었는데 일산으로 이사를 가신 이후 소식이 끊어져
그 이후 뵙지를 못했다. 수소문을 하여 찾기는 했지만
그때는 이미 작고하신 이후라서 그저 눈물만 흘렸다.
그렇게 존경하는 은사님을 촌부의 잠시잠깐 소홀함
때문에 더 이상 뵙지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늘 하셨던 말씀은 잊지를 못한다.
"글은 마음이다. 마음이 깨끗해야 하듯이 글은 마음
으로 써야한다."라는 가르침은 세월이 지난 지금껏
촌부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