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타이밍이 기가 막히네!
9월 11일, 음력 팔월 열사흗날
후드득거리는 빗소리에 여느날보다 일찍 잠을 깼다.
벌써 며칠째 가을 장맛비가 내리고 있는지 이젠 날짜
계산도 안된다. 한마디로 지긋지긋하다. 다행스럽게
이 비는 오후부터 그칠 것이라는 예보가 반갑긴 하다.
오늘 오후부터는 한가위 추석명절 연휴가 시작되기에
고향으로 향한 귀성행렬이 이어질테니 모두들 편하게
다녀올 수 있기를 바라는 촌부의 마음이다. 산골에도
오늘 식구들이 명절을 쇠러 온다고 했다. 아들 녀석도,
조카 딸내미도, 두 처제네도... 모두 다 반갑긴 하지만
마음 한켠엔 아쉬운 점이 있어 뭐라 표현을 못하겠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꽤 거세게 내리는 빗소리를 듣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어제 날씨예보와는 달리
아침나절부터 저녁무렵까지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았다.
간간이 소나기처럼 몇 방울씩 떨어지긴 했지만 해가
나와 덥기까지 했었다. 때는 이때다 싶어 밭을 나갔다.
가지나무를 뽑아내고, 이리저리 사방 엉켜있는 토마토
가지도 걷어내고, 마른 오이덩굴도 모두 다 걷어냈다.
오이와 토마토는 봄에 지지대와 유인줄을 묶었주었던
것을 일일이 풀어야 하는 일이라서 시간이 꽤 걸렸다.
소위 말하는 밭설거지를 한 것인데 아내가 나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도와주어 깔끔하게 마무리를 하였다.
그 자리에는 또 열무씨앗을 뿌려놓았다.
한참 밭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마을 아우네 제수氏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저씨! 밭에서 딴 붉은 고추 어떻게
하고 있나요? 맨날 비가 계속되어 어떻게 말리고 있나
싶어 궁금해서요." 카페에 널어놓고 조금씩 가져다가
리큅에 말리고 있다고 했더니, "그러지말고 있는 것을
모두 갖고 내려와요. 우리 비닐하우스에 널어놓으면
다음번 건조기에 넣고 말려드릴께요."라고 하시는 것
아닌가?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몇 번을 인사를 했다.
일을 마치고 읍내에 나가는 길에 고추를 싣고 갔는데
아우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전화했더니 제수氏는
마을 부녀회장이라서 효석문화제 자원봉사를 나갔고
아우는 면사무소에 볼 일이 있어 읍내에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더러 하우스에 공간이 있으니 고추를
널어놓으라고 하여 아내와 함께 널어놓았다. 역시나
비닐하우스가 좋긴 좋았다. 후끈후끈하여 고추가 잘
마를 것 같았다. 마을 아우네는 밭에서 고추를 따다가
비닐하우스에서 며칠 말린 다음 건조기에 넣고 거의
일주일 가량 고온이 아닌 저온으로 또 말린다고 한다.
그래야 색깔이 좋고 곱게 나온다고 한다. 하여간 너무
고맙다. 아내의 고생을 덜어주어서...
지난 토요일부터 봉평 읍내 일원에서는 효석문화제
일명 메밀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마침 마을 아우도
나와있다고 하여 축제가 열리고 있는 공연장 앞에서
만나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하여 만났다. 맛있는 것을
먹자고 하였으나 이럴때는 이런 곳에서 먹는 것이 더
맛있고 재미도 있다며 메밀막국수를 먹자고 하여 하는
수없이 함께 해물파전과 함께 시켜 맛있게 먹었다. 더
맛있는 것은 다음 기회에 먹기로 하고... 마을 아우와
점심을 먹고 헤지는데 "형! 이따 내려와서 양배추 좀
가져가요!"라고 했다. 고마운 마음에 그러마 하였다.
아내와 함께 축제장 한바퀴 돌아보고 은행에 들려서
일을 보고 마트에 들려서 장을 보고 급히 집으로 왔다.
비가 그친 틈을 타서 해야하고 꼭 해야할 일이 있으니
마음이 급했던 것이다.
집에 오자마자 읍내에서 사온 열무씨앗을 들고 밭에
나가 가지, 토마토, 오이를 걷어낸 이랑을 정리하고
뿌려놓았다. 지금은 열무 외는 다른 작물은 시기가
늦어서 모종을 심거나 씨앗을 뿌릴 수가 없다. 그냥
밭을 놀릴 수가 없어 김장 전까지 열무를 심어 먹을
생각이다. 지난번 열무로 물김치를 담갔는데 아주
시원하고 싱싱하고 맛있다. 아내는 아우들이 추석에
오면 함께 맛있게 먹을 것이라며 좋아라 하고 있다.
씨앗뿌리기를 마치고 부랴부랴 예초기를 짊어지고
중앙통로, 장모님댁 부근, 집으로 올라오는 길 양옆
그리고 아우들네 집앞에 무성하게 자라나서 볼상이
사나운 잡초들을 깎았다. 이 일은 아우들이 오기전에
꼭 하려고 했는데 연일 이어지는 비 때문에 못했던
것이라서 때마침 비가 소강상태인 틈을 타서 황급히
해치웠다. 아우들이 오면 좋아할테지?
한시간 남짓 예초기 작업을 마치고 샤워를 한 다음에
마을 아우네로 갔다. 양배추를 가져가라고 하였으니
염치불구하고 가지러 간 것이다. 그런데 따놓은 것이
아니고 밭에서 마음껏 따가라는 것이 아닌가? 아우가
골라주는 것을 따다보니 양이 너무 많았다. 한두 통을
주는 줄로만 알았는데... 먹고나면 또 와서 더 따가란
아우의 말에 마음이 찡했다. 너무 고마워서... 고추도
말려주고 양배추도 얻어오고 이래저래 신세를 지는
것이 너무나 미안하데 말이다. 추석에 아우들이 오면
나눠주어야겠다.
그러고보니 어제는 참 바쁘게 하루를 지낸 것 같다.
타이밍이 기가 막히게 맞아 떨어지게 일을 했으니...
비가 내리는 이 아침에 어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숨가쁘게 스치지만 뿌듯함에 미소를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