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
무우밭 두둑에 북을 주다가...
9월 2일, 음력 팔월 초나흗날
이른 아침부터 날씨가 영 심상찮다. 어둑어둑 아직은
어둠이 겉이기 전이긴 하지만 안개가 자욱하고 잔뜩
흐린 날씨다. 날씨예보를 검색해보았다. 이런이런 이
노릇을 어이할꼬? 내일부터 엿새동안 쭈욱 비예보가
있어 촌부를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잔뜩 따놓은 붉은
고추를 말려야 하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고추를 기르고 열리고 익힐 때는 하늘이 도와주더니
정작 햇볕의 힘을 빌려 말리고 햇볕의 이름까지 붙인
태양초로 만들려고 하니 방해를 하다니... 무슨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어이 해야할지 도통 생각이 안나니 원...
그저 하늘이 원망스럽다.
어제 저녁무렵 텃밭에 나갔다가 두 번씩이나 씨앗을
뿌려 지금 한창 잘 자라고 있는 무우밭에 북을 주었다.
두 고랑이면 충분히 우리가 겨우내 먹을 수 있는 무우
양이다. 밭고랑에 쪼그리고 앉아 북을 주는 일은 제법
힘들었다. 바짝 마른 밭고랑의 흙을 긁고 퍼서 두둑에
일일이 덮어주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북을 주다보니 아주 오래전 어릴적 생각이 나
한참 하늘을 올렸다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추억을
떠올렸다. 아마 그 땐 촌부가 열 살 남짓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까 55년이란 까마득한 옛날...
할머니께서 할아버지께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감! 솔등 무우밭에 북주로 갑시다!"라고
하시는 말씀에 옆에 있던 촌부가 이렇게 말을 하셨다.
"할무이! 북주는 게 뭔 데? 와 밭에다 북을 줍니까?"
그 말에 듣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껄껄 웃으시면서
"창곤아! 무우밭에 북을 주는 거는 무우가 잘 커라꼬
두둑에 흙을 덮어주는 걸 말하는 기다. 인자 알겄나?"
그렇게 설명을 해주셨지만 어린 나이에는 영 이해가
가지않았다. 당시에 촌부는 북이라는 말은 악기로만
알고 있는 것이 북이였기 때문에 그랬던 것으로 기억
한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했던 것이라고 짐작을 한다.
"할부이! 북은 치는기 북이제 와 북을 밭에 줍니까?"
라고 하여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어린 것의 하는 말이
하도 어처구니가 없었는지 마냥 웃으시던 그날의 그
기억이 나서 혼자 웃고 말았다. 아마 그 때 할아버지,
할머니 연세가 지금의 촌부 나이쯤 되었던 것 같다.
해가 어둑어둑 서산으로 저물어 노을이 질 무렵에
일을 마치고 들어왔더니 아내가 "밭에서 뭘 했소?"
라고 하여 "무우밭에 북주고 왔네. 북준다는 말이 뭔
말인가 아나?"라고 했더니 "이 영감탱이보게? 누구를
바보로 아나? 밭두둑에 흙을 긁어 덮어주는 거잖아?"
하여 "아이구야! 할멈은 모리나 했더마는 아는구나!"
하기사 19년째 텃밭농사를 짓고 있는데 "북준다"는
말을 모르면 촌부의 아내, 산골 아낙이 될 자격이 없을
테지? 그러고보니 우리말은 참 재미있고 멋스럽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럴땐 이렇게 좋은 우리글, 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지?
*북주다
식물의 뿌리를 흙으로 덮어 주다
흙을 긁어 올려 식물의 뿌리를 덮어주다.
*솔등 : 촌부의 고향 마을 밭이 있는 지명
*창곤(昌坤) : 가족들이 부르는 촌부의 이명(異名)
2019.09.02 06:57
촌부의 단상-무우밭 두둑에 북을 주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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