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붉은 고추 첫 수확, 신기록이네!
9월 1일, 음력 팔월 초사흗날
어느새 9월, 그 첫 날을 맞이한다. 잠에서 깨 일어나는
시간은 거의 변함없이 일정한데 바깥의 모습은 이제
점점 다른 모습이다. 아직도 깜깜하다. 날이 새고 밝아
지려면 아마도 5시반이나 6시는 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그래도 촌부의 발걸음은 밖으로 향한다. 요즘은 부쩍
일교차가 심해졌다. 밤새 내린 이슬이 나뭇가지에도
나뭇잎에도 맺혀있다가 아침이면 뚝뚝 떨어진다. 그
소리가 마치 빗소리처럼 들린다. 자작나무와 팥배나무
밑을 걷다보니 비를 맞는 듯하다. 그래도 이 가을날에
이슬방울을 비맞듯 하며 걷는 아침의 느낌이 참 좋다.
막바지 휴가철 휴일이라서 손님이 많고 일도 많았다.
평소보다 다소 늦은 귀가를 했는데 집에 아내가 없다.
어디 갔을까? 밭에 나갔나 싶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나갔더니 밭입구에 손수레가 보였다. 붉은 고추를 꽤
많이 따놓았다. "어디 있노?" 라고 소리를 질렀더니
"여기, 여기 있잖아!"라는 아내의 대답은 들려왔지만
고추밭 어느 고랑에 쪼그리고 앉아있는지 안보인다.
"두 번째 고랑에 있다니까..." 그때서야 촌부 키보다
더 큰 고추밭 고랑에서 붉은 고추를 따고 있는 아내가
보였다. "왜 혼자 그러고 있노? 함께 따자고 했는데"
"영감탱이 기다리다 안되겠다 싶어 먼저 시작했지!"
"벌써 많이 땄구만! 안쪽 작은 밭은 다 땄는가베?"
"올해는 고추가 엄청 크고 실해서 기분이 좋은데..."
"반장님댁 고추품종이 좋은갑다. 잘 선택하셨나봐?"
한 고랑씩 맡아서 밭고랑을 기다시피하면서 잘 익은
고추를 따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른다. 올해 텃밭농사에서 가장
신경을 썼고 심혈을 기우린 것이 바로 고추농사였다.
자급자족을 하겠다고 하는 아내의 작은 바람이었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였던 것인데 하늘도, 땅도, 고추도
아내의 그 바람을 알아주었는지 이렇게 잘 자랐고 잘
열렸고 잘 익어주어 첫 수확을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된
것이다. 지금껏 텃밭농사를 19년째 짓고 있지만 이런
해는 없었다. 여느해보다 조금 많이 심기는 하였지만
첫물 고추를 이렇게 많이 따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아내 말이 재밌다. "붉은 고추 첫 수확, 신기록이네!"
맞다! 신기록이다. 지난해 첫 수확은 겨우 두 양동이
될까말까였는데 올핸 그 보다 훨씬 많은 무려 4배가
넘는 아홉 양동이를 수확했다. 손수레에 가득 채웠다.
우리 부부의 보람은 그 보다 더 가득, 더 많이 채워진
느낌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올해 촌부의 고추농사는
성공작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손수레에 가득 싣고
카페에 자리를 깔고 펼쳐서 널어놓고 까만 그물망을
덮어놓았다. 한 이틀은 그렇게 두었다가 바깥에 내다
말릴 생각이다. 이제부터 아내는 아침, 저녁으로 고추
내다 말리고 또 들여놓느라 바빠질 것이다. 그나저나
햇볕 쨍쨍한 날씨라야만 아내의 바람을 도와줄텐데...
붉은 고추를 널어놓고 연신 싱글벙글 좋아서 어쩔줄
몰라하는 아내의 소박한 모습을 바라보는 촌부 또한
너무나 기분이 좋고 뿌듯했다. 농사를 지은 농부님이
느끼는 수확의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