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이제 가을인갑다!
8월 25일, 음력 칠월 스무닷새날
아내가 훝이불을 걷어치우고 겹이불을 꺼내 놓았다.
아침, 저녁의 공기가 신선하고 상큼하지만 밤으로는
쌀쌀한 기운마저 감돈다. 시원스레 들려오던 시냇물
소리는 이제 서늘한 느낌으로 들린다. 찬바람이 나긴
났는가 보다. 가을은 산골 아낙의 직감에서 비롯 되고
산골 촌부의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아내와 함께 텃밭으로 나갔다. 지난 초봄부터 지금껏
우리가 흘린 땀의 결실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올해
우리 부부가 가장 심혈을 기우린 것이 고추농사이다.
아내의 야심찬 계획대로 고추농사는 잘 된 것 같아서
기분이 좋다. 현재까지는 당초 계획대로 자급자족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잘 익은 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잘 익어가고 있다. 아내는 벌써부터 조바심이 나는가
보다. "잘 익은 고추가 참 예쁘다. 언제쯤 따면 될까?"
"이제 시작인데 뭘 그리 급하노? 쪼매 더 기다리세!"
"빨간 고추를 보니까 빨리 따서 말리고 싶어 그러지!"
"이 사람아! 농사가 어디 마음 먹은 그대로 되는가?"
"하긴 그렇지! 땅의 기운, 하늘의 도움, 우리의 정성
이렇게 3박자가 잘 맞아야 되는 것이잖아? 그나저나
날씨가 좋아야 할텐데... 이제 비는 더 안 오겠지요?"
"그러기를 바래야겠지? 농사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했던가? 흔히들 그러잖아, 농사는 다 시기가 있다고"
이렇게 우리는 잘 익고 있는 고추를 보면서 밭고랑에
서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추들도 우리의
이런 이야기를 들었으리라! 집으로 오면서 아내에게
"당신 고추 딸라모 밭고랑에 들어가 쪼그리고 앉아서
고생을 좀 해야할기고 말릴라모 들락날락 바쁠긴데
미리 체력이나 많이 비축해야 할걸세!"라고 했더니만
"여보시오! 그런 걱정일랑 안해도 됩니다요. 그 일은
농사의 보람이요, 수확의 기쁨인데 그 정도 고생쯤은
얼마든지 해도 상관없다 이 말씀이요!"라며 웃었다.
고추는 이제 시작인 반면 오이와 노각, 호박은 끝물에
가깝다. 두 군데 나눠 심은 오이는 무성했던 잎파리와
덩굴이 서서히 물기가 없이 말라가고 있다. 그래서 끝
부분에 달린 오이는 바로 익어버린다. 꽤나 많이 따서
나눔도 했고 지금부터 시작해 겨우내 그리고 내년 봄
오이가 나올때까지 먹을 양은 충분히 저장식품으로
만들어 놓은 아내는 마른 오이덩굴을 보며 고맙다는
말로 인사를 전하는 고운 감성을 지닌 산골 아낙이다.
아직 애호박은 이따금씩 우리가 먹을 만큼은 열린다.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으나 한동안은 갈 것 같다.
잎에 가려서 미처 애호박일때 제때 따지못한 것들은
엄청 자라서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호박인줄 모르고 오이밭에 심은 둥근 호박도 몇 개가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받침대를 해줘야 할 것 같아서
찾다가 마땅한 것이 없어 눈썰매를 엎어서 받침대를
해줬더니 고마웠는지 아주 예쁘게 잘 익어가고 있다.
노각무침만 있으면 밥 한 그릇 뚝딱 해치우는 아내의
베스트 찬거리 노각도 거의 끝물에 가깝지만 몇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서 아내의 기분을 좋게 하고 있다.
텃밭을 한 바퀴 둘러보고 들어오면서 아내가 하는 말,
"이제 가을인갑다!"라고 하여 촌부는 곧바로 대답했다.
"하모! 인자 가을인기라, 가을이라니..."라고 했더니
"경상도 섬 개구락지가 강원도 감자바우가 되더니만
말도 짬뽕이네.ㅎㅎ"라고 하여 한바탕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