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더덕꽃이 피면...
8월 12일, 음력 칠월 열이튿날
이른 아침,
이슬이 깨기도 전(前)이지만 고추밭에 들어가 고랑을
기다시피하며 여기저기 살폈다. 폭염에 혹시 고추가
상하여 떨어진 것이 있는가 싶어 살펴본 것인데 몇 개
상한 것이 보였다. 며칠전 칼슘제를 엽면시비를 하여
괜찮을 줄 알았는데 드문드문 발견되어 걱정스럽다.
아내가 야심차게 고추농사를 잘 지어보겠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 자주 들여다 보는 것이 일이 되었다.
그래도 지난해에 비해서는 괜찮다. 아무래도 칼슘제를
한번 더 줘야겠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으니 상한 것은
보이는 즉시 주워낸다. 마을 아우 하는 말을 빌리자면
"형! 고추는 농약 안주고는 안될텐데... 요즘의 농약은
치고나서 몇 시간만 지나면 흡수되고 증발하여 바로
따서 먹는 것이 아니면 괜찮으니까 농약을 치라니..."
많이 망설였다. 지금껏 19년째 채소 농사를 지으면서
한번도 농약 살포를 하지않았다. 그 기록을 깨뜨리고
싶은 생각 없는데 어쩌나? 난공불락(難攻不落)이요,
진퇴양난(進退兩難)이로구나! 생각을 좀 더 해보자!
그래도 키는 쑥쑥 잘 자라고 고추도 주렁주렁 열린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면서 마지막 고추끈을 묶었다.
더덕꽃이 피면,
아주 오래전 젊은 날, 혼자서 설악산에 등산을 갔다가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며 다니다 이상한 냄새가 나서
주변을 살폈더니 초롱처럼 생긴 꽃이 예쁘게 매달려
있는 것을 발견했다. 하도 신기해 길을 잃었다는 것도
잊고 한참을 바라봤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땐 이 꽃이
더덕꽃인 줄도 몰랐다. 운좋게 더덕 덩굴을 건드려서
주변을 지나던 약초꾼이 그 냄새를 맡고 더덕을 캐러
왔고 그 약초꾼을 만나 무사히 산을 내려올 수 있었다.
그 때가 아마 지금 무렵이었던 같다. 그래서 더덕꽃을
보면 옛 생각이 난다. 그 생각이 머리속에 남아있어서
그런지 이곳 산골에 와서 살면서 다시 더덕을 만났고
앞뜨락이며, 산기슭이며, 밭가 여백에 더덕을 심었다.
그리고 앞뜨락은 사방에 더덕이 자라 매어놓은 줄을
타고 덩굴이 뻗어나가 자연스런 조경이 된다. 이맘때
꽃이 피면 얼마나 예쁜지 모른다. 이른 봄날 자주색에
가까운 싹이 트고 점점 연두색의 덩굴로 변해가면서
넉장의 잎이 차례차례로 나온다. 덩굴은 아무것이나
타고 오르며 길이가 2~5m를 뻗어간다고 한다. 또한
땅속에서는 뿌리가 튼실하게 자란다. 이 뿌리가 바로
우리가 식재료로 사용하여 먹는 귀한 더덕인 것이다.
시중에 나오는 더덕은 주로 밭에서 기르는 재배 더덕,
촌부가 기르는 것은 재배 더덕과는 달리 거름을 전혀
주지않고 자연 상태로 그냥 그대로 기르는 것이라서
자연산 더덕이라 해도 손색이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초롱을 매달아 놓은 듯한 예쁜 꽃도 보고, 씨앗을 따서
또 여백의 땅에 뿌려놓고 잊어버린 듯이 한참을 지나
캐보면 커다란 더덕이 되어 진한 냄새를 풍기게 된다.
그 맛은 또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집에서 자연상태로
더덕을 길러 싹이 트는 때부터 덩굴이 뻗어가며 잎이
무성해지고 꽃이 피고 씨방이 생겨 씨앗이 여물어 그
씨앗을 받는 일련의 더덕 성장과장을 감상하며 관찰을
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덕은 우리 몸에 좋은 성분을
가지고 있는 보약과 같은 자연 식재료이다. 이상하게도
더덕꽃이 피면 여느 꽃과는 달리 말벌과 같은 커다란
벌이 날아와 꿀을 따는 것을 보게 된다. 벌에게도 좋은
성분을 가진 꽃인가 보다. 작은 벌은 감히 접근 엄두도
못하는 것 같다. 더덕은 사람에게만 좋은 것이 아니고
하물며 곤충들도 좋은 것을 알고 그러는 것 아닐까?
그런면에서 보면 식물이지만 참으로 대단함을 지닌 것
아닐까? 겸손함이라 땅을 향해 피는 수줍음으로 피는
꽃이 더덕꽃이 아닌가 싶다. 잘 모르긴 하지만 그래서
더덕꽃의 꽃말이 "성실, 감사"가 아닌가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