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밭고랑을 와 파는교?
7월 9일, 음력 유월 초이렛날
어제는 어머님 2주기 기일을 맞아 인천 용화선원에서
아우들과 불교의식으로 기제사를 지내고 왔다. 집에서
제사를 모시지 않아 식구들이 모여 식사 한번 하기도
쉽지않다. 그래서 절에서 기제사를 모신 다음 어머님
생각을 하며 한적한 곳의 맛있는 음식점에 온 식구가
모여 회식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전통적인 제례
문화에서 벗어난 짓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 생활에서 이 방법이 좋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하기로 아우들과 뜻을 모았다. 두어 해 이렇게
지내고보니 우리 나름 자부심이 생기고 오히려 모든
면에서 잘했구나 싶다. 가족들이 모여 제사도 모시고
또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서로 멀리 떨어져 살고 있어
나누지 못한 가족간의 사랑도 나눌 수 있어 좋았다.
이른 아침 텃밭을 돌다보니 밭고랑에 무성하게 자란
잡초들이 눈에 거슬렸다. 뻗어가는 오이넝쿨 묶으러
나가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무슨 일을 먼저 해야할까?
아무래도 아무렇게 뻗어가는 오이넝쿨부터 유인줄에
묶어주는 것이 순서일 것 같아서 먼저 그 일을 하였다.
그 다음 목장갑을 끼고 장화를 신고 양동이와 호미를
들고 작은밭 밭고랑으로 출동했다. 잡초 소탕작전을
펼치기 위해서... 우와~ 이 놈들이 촌부가 며칠 바빠
방심을 한 사이에 이렇게나 무성하게 자라나 촌부와
맛짱을 뜨겠다고 떡하니 자리를 잡아 진을 치고 있네.
햇살이 퍼지기 전 아침이라서 선선하고 잡초 소탕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밤새 내린 이슬에 촉촉하게
젖어 호미로 밭고랑을 파기도 좋았다. 호미로 파내고
파낸 잡초가 금새 한 양동이가 되어 퇴비장에 버리고
와서 다시 밭고랑을 호미로 파고 있는데 아내가 왔다.
아침마다 이것저것 믹서기에 넣고 갈아서 만든 주스
한 잔을 들고 마시고 하라며... 밭가에 와서 서자마자
"우와~ 밭고랑이 마치 기생오라비 처럼 말끔해졌네!
그런데 왜 호미로 밭고랑을 다 파헤치고 있어? 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문득 어릴적 생각이 떠올랐다.
아주 오랜 옛날, 그러니까 촌부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고향에서 지내던 때였다. 부모님은 우리 형제를
조부모님께 맡겨두고 서울로 가셔서 몇 해를 그렇게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아었다. 농부이셨던 두 분
밑에서 자란 그 시절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는 좋은
추억이다. 그 어릴적의 기억은 지금 텃밭농사에 많은
도움이 된다. 그 시절에는 멀칭을 친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던 때였다. 어느해 이맘때 쯤으로 기억을
한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솔등(고향마을 지명)
콩밭에 김을 매러갔다. 할아버지께서 바지개를 얹은
지게에 할머니가 밭고랑에서 캐낸 잡초를 싣다말고
밭가에 쪼그리고 앉아 풍년초를 꺼내 짧은 곤방대에
넣고 뽀끔뽀끔 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그 옆에 어렸던
촌부가 앉아 한참 콩밭에서 김 매고 계시는 할머니를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을 했다. "할무이! 풀만 뽑으모
되제 와 뭐할라꼬 밭고랑을 호미로 헤비 파삐는교?"
라고 했더니 저만치 밭고랑에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열심히 호미질 하시던 할머니께서 방끗이 웃으시며
"우리 창곤(아호로 쓰는 촌부의 옛 이름)이가 그기
궁금한가베? 영감! 아한테 와 이러는고 좀 갤키주소!"
라고 할아버지께 소리를 지르듯이 말씀을 하셨다.
곤방대를 물고 담배를 피우고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창곤아! 할매가 풀만 안캐내고 와 호미로 밭고랑을
저리 헤비 파는고 하몬 흙속에는 쬐끄만 풀들이 마이
크고 있는기라! 호맹이로 파제끼모 풀뿌리가 나올거
아이가? 그라모 그기 흙우에 있다가 햇볕에 말라서
죽어삐는기라! 그래서 할매가 밭고랑을 호맹이로 다
파헤비고 있는 기제! 인자 알겄나?"라고 아주 자세히
알려주셨다. 오늘 촌부가 밭고랑을 호미로 파헤치는
것을 보고 아내가 왜 그러냐고 하는 말에 떠오른 아주
오래된 아련한 추억 하나를 소환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