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망중한(忙中閑)
6월 19일, 음력 오월 열이렛날
오늘도 어제와 같이 비가 추적거리는 날씨가 되려나
보다. 아직 장마가 오려면 멀었는데 마치 장마철같다.
봄가뭄으로 비를 원하던 것이 불과 얼마전이었는데
이제는 하도 시도때도 없이 비가 추적거려서 거꾸로
툴툴거린다. 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닐텐데 말이다.
이럴때 쓰는 말이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라고 했던가?
어제는...
하루종일 비가 오락가락 내렸다. 마치 장마철 처럼...
아침나절에 잠시 지난번 내린 우박에 폭탄을 맞은 것
처럼 구멍이 숭숭 나버린 상추를 뜯어 밭고랑에 그냥
방치한 걸 치우면서 밭고랑 멀칭 비닐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쇠비름, 바랭이를 뽑았다. 우박 맞은 상추잎을
치우는 것도 속상하는데 이놈들은 단단하게 밭고랑
깊숙히 뿌리를 내려 마치 제자리인 듯이 버티고 있는
녀석들이 귀찮고 미워 죽겠다. 대단한 생명력, 끈질긴
잡초의 근성이라는 것은 인정을 하겠으나 채소들의
양분을 빼앗아 먹으며 촌부를 힘들게 하는 것은 참을
수가 없다. 모조리 다 뽑아제꼈다. 상추, 오이, 대파를
심은 작은 밭을 거의 다 뽑아갈 즈음 한바탕 장대비가
쏟아져 하던 일을 중단했다.
아내가 어서 들어와 씻고 원주에 다녀오자며 불렀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에 수영장 입구에서 길냥이가 새끼
두 마리를 데리고 장난을 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슬금슬금 다가가 사진을 찍으려는데 어미는 바라보면
그대로 앉아있으나 새끼 두 마리는 쏜살같이 수영장에
올라가는 데크 계단 밑에 들어가 버렸다. 먼발치에서
기다리며 바라보고 있었더니 두 녀석이 계단 난간에
고개를 내밀고 촌부를 경계 하듯이 바라보고 있는 것
아닌가. 그 모습이 얼마나 귀여운지... 집에 들어와서
아내에게 길냥이 가족 이야기를 했더니 새끼 낳느라
고생했을 것이라면서 햄과 개맛살을 잘게 잘라서 주며
길냥이에게 갖다주고 오라고 했다. 먹이를 들고 가서
슬며시 다가서자마자 어미와 장난을 치고있던 새끼는
또 줄행랑을 쳤다. 또다시 먼발치에서 보았더니 이내
다시 나와 어미와 함께 그릇에 고개를 뒤밀고 셋이서
갖다준 먹이를 먹느라 부산을 떨고 있었다. 우리집에
길냥이가 들어와 산 것은 꽤 오래전부터이다. 길냥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쥐와 들쥐가 사라진 것이라서
고맙기도 하다. 그래서 아내는 가끔씩 길냥이를 보면
먹이를 챙겨주곤 한다. 그런데 살펴본 바에 의하면 이
길냥이들은 새끼를 낳고 어느 시기에 이르면 독립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그건 그렇고 이 녀석들은 어떻게
먹이를 구해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계속 먹이를 줄 수는 없겠지만 한동안 안보이다가 또
잊을만하면 나타나 단지를 배회하고 다니니까 말이다.
녀석들도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겠지만...
아내와 함께 원주에 나가서 병원 진료를 받고 약국에
들려 약을 탔다. 요즘 아내가 얼굴에 알레르기 증상이
있어 피부과 진료를 받고 있다. 이런 일은 처음인데
아마도 면역력이 떨어져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스럽다. 나간 김에 가끔씩 들리는 냉면집에 들려
냉면 한 그릇씩 시켜 맛있게 먹었다. 서울에서 먹었던
냉면 맛이 난다고나 할까? 근동에서 냉면을 이 정도로
맛있게 하는 집은 없는 것 같아 원주에 나가면 가끔씩
먹고오는 집이다. 아내는 그냥 냉면, 촌부는 회냉면...
오는 길에 봉평 읍내 미용실에서 덥수룩해진 머리를
자르고 보건소에 들려 장모님 약을 타가지고 왔다.
집에 오면서 생각했다. 들어가서 밭에 나가 줄콩 넝쿨
유인줄을 묶어주어야 겠다고... 그런데 집에 오자마자
또 빗방울이 후두둑 거렸다. 이내 거센 비가 내렸다.
오락가락 했으니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 보기로 했다.
하지만 비는 그치지 않았다. 현관을 들락거리는 것을
본 아내가 "여보시오! 오늘은 틀렸으니 푹 쉽시다요.
이리 오시오! 진한 커피 한잔의 여유나 즐겨봅시다!"
라고 하였다. 커피를 끓여 2층 창가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빗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셨다.
"그려, 이런 걸 두고 망중한(忙中閑)이라 하는 거야!"
그리고 나서 기왕 여유를 부리고 즐기는 것, 오수까지
즐기면 더 없는 망중한의 여유가 아니겠냐며 깊숙히
낮잠에 빠지고 말았다. 저녁무렵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