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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부의 단상

IMG_20190611_3.jpg : 촌부의 단상-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고...IMG_20190611_2.jpg : 촌부의 단상-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고...IMG_20190611_5.jpg : 촌부의 단상-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고...IMG_20190611_4.jpg : 촌부의 단상-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고...[촌부의 단상]
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고...

6월 11일, 음력 오월 초아흐렛날

이른 아침 기온은 영상 7도, 꽤 서늘해 반팔옷이 많이
부담스럽다. 한기(寒氣)를 느낄 정도이다. 안되겠다!
이러고 돌아다니다가 감기 들겠다 싶어 안에 들어가
긴소매 옷으로 갈아 입고 다시 나왔다. 밤새 촉촉하게
이슬이 내려 땅바닥이 푹 젖었다. 밭가에를 걷다보니
흙내음이 풋풋하다. 이 보다 더 좋은 냄새가 있을까?
이슬을 머금은 채소들의 모습은 싱그럽기 짝이 없다.
문득 엉뚱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채소에게 생각이
있다면 이런 환경에서 자라는 녀석들은 뭐라고 할까?
지금 촌부의 머리를 스치는 그 생각과 일치하려나?
녀석들은 행복할 것이라고... 

어제 산골부부는 이른 아침부터 꽤 분주하게 움직인
하루였다. 지난번 100mm가 넘는 비가 내려 가뭄이
해갈되고 뒤를 이어 그제 밤에도 양은 얼마 안되지만
촉촉하게 비가 내려서 밭작물들이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다. 채소 위주의 작물이지만 잘 자란다고 그냥 두고
기다리는 것은 농사가 아니다. 더 잘 자라게 하기위해
주인의 정성어린 손길이 닿아야 하는 것이 농사이다.
촌부와 산골 아낙은 나름의 방법을 모두 다 동원하여
텃밭농사를 짓는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예감이 좋다. 

이슬비가 부슬거리는 이른 아침 밭에 나가 밭고랑에서
저절로 나와 자라는 자그마한 아욱 옮겨심기를 했다.
특이하고 번식력이 대단한 녀석들이다. 언젠가 한 해
밭에 아욱씨를 뿌려 길렀다. 그 이후에는 모종은 물론
씨앗을 뿌리지 않았다. 밭고랑에 저절로 나와 자라서
모종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하나하나 모종삽으로 캐다
심으면 종묘상에서 사다 심는 모종보다 더 잘 자란다.
이 모종들을 포기 못하는 이유는 아내가 아욱을 엄청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심어서 키운 아욱은 잎을
따서 데쳐 된장을 풀고 아욱국을 끓여 먹는다. 해마다
이런 방법으로 아욱을 길러 잎을 잔뜩 따서 데쳐 냉동
보관을 해두면 일년 내내 언제라도 아욱국을 먹을 수
있다. 올해도 아내는 아욱 잎을 많이 딸 것 같다면서
벌써부터 싱글벙글이다.

그 다음에 산골 부부는 고추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난 비에 부쩍 자란 고추에게 정성어린 손길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모종을 심어놓았다고 그냥 자라는 게
아니다. 곁가지와 곁잎을 따주어야 더 크게 자랄 뿐만
아니라 튼실하게 열매가 많이 달리는 것이다. 밭고랑
사이에 쪼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곁가지와 곁잎을 따
주는 일을 했다. 이 일은 보기와는 달리 세심한 신경을
써야한다. 아직 여리고 약하여 잘못하면 꺾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서 따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다. 아내는 곁가지와 곁잎
딴 것을 버리지 않는다. 손질해 데치면 좋은 찬거리가
되기 때문이다. 알뜰한 아내의 생각에 잎파리 하나도
버릴 수가 없이 모두 봉지에 담았다. 

간간이 이슬비가 부슬거려서 밭일을 더 할까말까 잠시
망설이는데 아내가 텃밭농사 환상의 복식조 호흡을 더
맞춰보자고 했다. 바로 첫 번째 고추끈 묶기를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며 아내는 고추끈 뭉치를 담은 작은
배낭을 매고 앞장서 가면 그 배낭에서 고추끈이 마치
거미 뒷꽁무니에서 거미줄이 나와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온다. 그러면 촌부는 그 줄을 붙잡고 미리 세워놓은
지지대에 묶어 고정 시킨다. 혼자해도 되는 일이지만
우리는 함께 웃고 떠들고 즐기며 일을 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일을 하다보면 힘도 덜 들고 능률도 오른다.
고추끈 묶기를 마치고 기왕에 시작을 했으니 조금 더
호흡을 맞추자며 오이, 노각, 조선오이 유인줄을 묶고
부쩍 키가 자란 방울토마토도 첫 번째 끈묶기를 했다.
그 뿐만 아니라 가지도 지지대를 밖아서 첫 번째 끈을
묶어 고정시켜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줄콩 유인줄을
묶어주면 된다. 이 모든 일들은 우리 나름의 방법으로
하고 있는데 농부님들이 보면 지지리 궁상을 떤다고
하겠지만 지난날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라서
너무나 뿌듯하다. 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히는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

일을 거의 마칠 무렵 원년의 산골 식구들이 하나 둘씩
산골집에 도착했다. 모처럼 장모님을 모시고 자식들이
모여 가족모임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경기도 광주에
사는 처남 내외, 인천에서 카페와 학원을 하는 처제네
부부와 멀리 경북 영주에서 사과 과수원을 하고 있는
막내 처제네 부부가 왔다. 아내와 촌부의 신발만 놓여
있던 현관에 가족들의 신발이 빼곡히 놓인 것을 보니
그 모습이 어찌나 좋은지 몰랐다. 장평에 나가 식사를
함께 하고 집에 들어와 얼마전 지나간 동서와 이틀전
지나간 막내 장서방  그리고 어제가 생일날인 처남의
생일을 합동으로 축하하며 생일 케익을 잘랐다. 이런
모임이 자주 있으면 좋겠지만 모두 바쁘게 살아가는
현실이라서 그럴 수가 없음이라 마음 한 켠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나마 이렇게 한 자리에 함께하는 시간이
너무나 좋고 뿌듯하여 만감이 교차하였다. 밭에 나가
촌부가 상추를 뜯는 사이에 아내는 냉동고, 냉장고, 
창고를 열어 이것저것 꺼내와서 아우들에게 조금씩
싸주었다. 모두들 친정집 다녀가는 그런 기분이라며
좋아했고, 아내는 장모님 계시지만 마치 친정엄마가
친정 다녀가는 자식들에게 이것저것 바리바리 싸주는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산골집에 다녀가는
아우들에게 작은 것이지만 싸줄 수 있음이 그 얼마나
다행이며 뿌듯함인지 모르겠다며 아우들이 다녀간
여운을 애써 감추려는 아내의 웃는 모습에서 이 세상
사는 즐거움과 보람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이렇게 분주했지만 
그 분주함은 뿌듯함으로 덮힌 산골 부부의 하루였다.
Atach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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