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금낭화 예쁜 꽃이 핀 날에...
5월 21일, 음력 사월 열이렛날
오늘은 만물이 생장하여 가득 차는 날이라는 뜻으로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된다는 절기인 소만(小滿)이다.
어제는 비가 그치고 나서 바람이 꽤 불었으나 상쾌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 떠가는 구름마저 깨끗해 보여
마치 가을날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은
갑작스레 차가워졌다. 지붕에 서리가 하얗게 내렸고
기온은 영상 3도까지 뚝 떨어졌다. 날씨가 심상찮아
순간 겁이 덜컥 났다. 황급히 옷을 챙겨입었다. 혹시
엊그제 심은 고추모종이 걱정되어 한걸음에 밭으로
나가보았다. 다행히 꿋꿋하게 서있는 고추의 모습에
안심을 하였다. 부디 간밤에 내린 서리에 냉해를 입지
않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심어놓은 농작물을
살펴보며 한바퀴 돌아보고 들어왔다. 이제 매일 주인
발걸음 소리를 들어야 잘 자란다는 말처럼 아침마다
녀석들과 함께 할 것이다.
앞뜨락에 예쁜 주머니를 매달아 놓은 듯한 금낭화가
예쁘게 피었다. 실물 뿐만 아니라 이름도 예쁜 꽃이다.
금낭화(錦囊花),
비단錦, 주머니囊, 꽃花를 우리말로 풀어서 쓰면 비단
주머니 같은 꽃이란 이름을 가진 꽃이다. 야생화가 다
저마다 특이하고 저마다의 특징을 지닌 이름을 가지고
있듯이 금낭화 꽃도 마찬가지로 꽃 모양새에서 비롯된
이름이 아닌가 싶다.
금낭화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오래전 추억이 생각난다.
촌부가 19년전 이곳 산골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정을
붙이게 된 것이 야생화이다. 꽃이름도, 그 이름의 뜻도,
특징이나 생육 환경도 전혀 모른 채 그저 눈에 보이는
꽃이 좋아서였다. 하지만 꽃은 예쁘고 좋은데 이름을
몰라서야 되겠는가 싶어 마침 김태정 박사님이 펴낸
"쉽게 찾는 우리 꽃"이라는 책을 알게 되어 구입했다.
계절별로 꽃 색깔별로 구분된 사진과 함께 설명되어
좋은 공부가 되었다. 그 외도 몇 종류의 야생화 책을
사다가 보면서 야생화에 대한 관심과 열정으로 아주
열심히 아내와 함께 야생화에 심취했던 기억이 너무
새롭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블로그를 열심히 하였던
때라서 PC와 노트북으로 테마별로 분류하면서 글을
썼다. 꽤 오래전부터 일기를 써오던 터라서 블로그도
일기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그렇게 야생화 공부까지
하며 글을 썼는데 어느 때부터 그 열정이 많이 식어
블로그를 중단하고 그저 산골에서 살아가는 산골살이
이야기로 변해버렸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꽤
야생화 관찰에 관심을 많이 가졌는데 어떤 연유에서
비롯되었는지 소홀해졌다. 많은 일에 치여 그랬을까?
그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먹고사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었니까. 그래도 관심이 조금 식기는 했지만 아주
잊어버리지는 않았다. 그래서 다시 관심을 가져볼까
싶다. 야생화에 관심을 갖게 했던 꽃이 금낭화라서
잠시 샛길로 빠졌다. 다시 금낭화 이야기로...
금낭화는 예쁜 꽃이지만 그 예쁨 이면에 슬픈 전설을
갖고 있는 꽃이다. 간략하게 간추려보면, 오랜 옛날
어느 왕자가 예쁜 소녀를 사랑하여 구애를 하였으나
거만한 소녀의 거절로 왕자는 실망하여 그만 창으로
가슴을 찔러 죽고 말았다. 그 뒤 왕자의 무덤가에서
눈물이 주렁주렁 매달린 것 같은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바로 금낭화라고 한다. 그래서 금낭화의 꽃말이
'당신을 따르겠습니다'로 붙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금낭화 꽃은 연한 홍색이고 휘어진 듯한 줄기를 따라
아래에서 위 끝쪽으로 올라가며 심장형(하트형)처럼
차례차례 달리고, 완전히 개화되기 전까지는 좌우로
하얀색이 붙어있다. 그 흰색이 완전 개화가 되면 위로
말려 올라간다. 참으로 신기하고 오묘하고 경이롭다.
또 꽃 가운데 하얀 주머니 모양으로 보이는 것은 바로
암술과 수술이 함께 들어가 있는 것이라고 한다.
슬픈 전설을 간직한 금낭화 꽃마냥 어제 촌부는 그간
살아가느라 바빠 잊었던 슬픔이 되살아난 날이었다.
어제 이른 아침 아내와 함께 서울을 거쳐 일산에 다녀
왔다. 지난달에 둘째 여동생이 세상을 달리한지 어언
49일이 지나 일산에 있는 절에서 49재(四十九齋)를
지내고 왔다. 불교에서 하는 종교의식이 아니고 그냥
아우의 두 아들과 우리 형제들이 다 모여 안타깝게 간
아우를 추억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아우가 가기전인
생전에 절대로 복잡한 의식은 치르지 말아달라는 그
당부에 따라 납골당에서 묵례로 끝냈다. 끝까지 모든
것이 깔끔했던 아우라서 마음이 더 많이 아픈 것이다.
그렇게 걱정했던 작은 아들이 당당히 소방관 시험에
합격을 한 것을 보지도 못하고 떠났으나 이제는 안심
하리라 생각된다. 이제 49재도 지났으니 탈상을 한
것이라서 모두들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하 사는 것이
먼저 간 아우의 몫까지 사는 것이라 생각하자고 우리
가족들에게 당부하였다. 가족들이 다 모였으니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점심식사를 하였고, 차를
마시며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앞으로
맏이로서 이런 행사는 금낭화 꽃처럼 비록 마음속에
슬픔은 간직되어 있지만 서로 각자의 위치에서 바쁜
생활을 하느라 자주 못만나기에 간단히 추모를 하고
함께 모여 화기애애하게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그런
시간을 갖도록 하며 우리가족을 이끌어 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