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산회의 새해 들어 첫 버스나들이는 전라도의 동남쪽 그트머리에 자리하고 있는 순천의
꽃놀이 정원으로 정하졌다.
얼추 거리 생각해보아도 너댓시간은 걸릴것 같다. 다녀오는 시간은 거의 왼종일이겠지...
약간은 머뭇거리고나 주저하게 된다.. 갈까? 말까??
새 봄, 새 기분으로 몸과 마음을 REFRESH 하는 이벤트로 생각하자.
편안한 밤잠,새벽잠 떨쳐내고 동천역 환승정류장으로 아침일찍 잰걸음을 디뎌본다.
언제나 그러했듯이 오늘도 뉴신명관광 버스에 오르니 관형총무가 반가이 우덜을 맞아준다.
버스기사는 제법 젊은 친구다.
기흥휴게소를 접선장소로 하여 이른새벽 각기 다른 곳에서 출발한 1,2호차가 친구들을
풀어놓으니 모두모두 반갑다.
이게 얼마만?? 시산제이후 겨우 한달밖에 지나지 않았음에도 기쁘고 반갑고 보고싶다,
우리친구들이...
오전 10시 50분경 순천만 국가정원에 차를 댄다. 대형주차장에는 이미 전국 각지에서 치달려온
버스가 빼곡히 들어서있다.
경찰관님들,안내가이드 님들,,, 너나 할것 없이 분주히 하면서도 미소가득 친절함이 그만이다.
정원에는 꽃들이 만개하여 향기로 내 몸과 맘이 호사를 한다.
꽃들은 거개가 개량으로 변형된 튜립이다.
겹겹이고 큼지막한 모란스타일의 튜립이 주다. 그 이외는 그다지 눈에 들어오지를 않는다.
일본,중국,독일,영국 .태국 등 각 국가별 테마식 정원으로 구획은 되어 있다. 허나 썩 디자인이나
수종, 디스플레이 기법등등...
조금은 부족하게 보인다.
여러해 지나면 훨씬 개선되겠지 하며 오후 1시 벌교로 향한다.
벌교 시장통, 벌교KT 전화국 바로 옆에 있는 거시기 꼬막식당에서 이 고장의 별미 꼬막으로 입을 즐겁게 한다.
이 거리에 꼬막집이 족히 20여개는 넘는 것 같다.
점심을 즐기며 오늘의 주관자인 강희회장과 관형총무 등 집행부의 인사말씀과 언제나도 그러하듯이
우리의 구호 악악악 !!!!
탄성삼발을 외쳐본다..
이곳 벌교가 1930 ~40년대에는 남도에서 광주. 목포 다음으로 큰 3대도시라 한다.
바다와 강하구가 만나 각종 해산물이 집산하여 거래되는 대형 상거래 시장이었고
전남 송정리와 경남 삼랑진을 연결하는 경전선이 건설되어 이곳에 벌교역이 건설되어
인근 보성과 고흥의 해산물,농산물 등등의 물산이 집결되어 도산매되는 신흥상업중심지로
발전되고 아울러 여기서 수매된 집산물은 대부분 일본으로 건너는 일제 경제수탈지의 거점이었다.
그런 연유로 인하여 이 당시 일본인 거주자가 수백가구는 되었다 하며,
또한 유서깊고 명문인 벌교상고가 여기에 자리매김하였다.
마치 일제시대 강경과 강경상고의 관계처럼 말이다.
중식후 근처 조정래의 문학관으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조정래의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소설속 주인공 염상진이 남로당 전남 보성벌교 위원장이고 지주아들이고 지식인이지만, 사회주의
활동에 적극가담한 김범우,그리고 정하섭과 무당딸 소희의 애틋한 사랑이 아롱다롱 새겨진
현부자네 대가집 저택,, 양조장, 등 주된 등장인물과 소설 속 공간이 이곳 벌교다.
태백산맥 문학관 앞 골목에는 소희네 무당집, 현부자네 고택, 산으로 오르는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기행의 등산로가 펼쳐저 있어 소설 속 향기를 그득히
머금은 채 오롯이 있음에 나 스스로가 설레인다.
더더구나 작가 조정래의 부친역시 벌교상고의 국어선생님으로 재직하였고 작가
역시 부친슬하에서 여기 벌교에서 살았으니
대작의 무대가 벌교가 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이라고 해야겠다.
1948년 여순반란(여수와 순천)사건이후부터 1950년 한국전쟁과 종전시기 1953년까지의
극한의 좌우 갈등과 투쟁, 전쟁,살육 등등 질곡의 우리네 역사를
뼈를 깍고 피를 토하며 쓰고 또 쓴 태백산맥이다.
작가가 이글을 1983년 1989년 까지 장장 6년에 결쳐 집필하였는데 그 시절은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문학전문잡지인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이 연재된 이후 작가가 겪어야 햇던 숱한 고난들,,,
조정래 네놈 빨갱이 아니냐?,
회유야 압박 그리고 끝없이 밀려오는 작가스스로의 번민, 고뇌..
차라리 무녀 소희에미에게 해원의 굿판을 올려야 하나???
새삼 작가의 열정과 희생, 피가 역류하는 심장을 부여잡고 몸부리치던 작가적 사명감에
머리가 숙연해진다.
우리 땅, 최고의 곡창지대인 김제 만경강을 끼고 지평선까지 보여지는 넓다란 황금벌판이
김제평야다.
이곳의 일제식민시대의 수탈과정과 한반도와 중국,러시아에서 조국 광복을 위하여 몸을 던진
선현들의 독립운동사를 처연하고,냉철하게 써내려 간 책이 작가의 또 다른 대작 아리랑이다.
아리랑은 구한말 즉 한일 강제 병합 직전이 1900년초에서 부터 1945년 일제패망과
대한 독립까지의 약 50여년간의 격변과 난맥의 한국근대사이다. 이 아리랑을 기념하는 문학관이
벌교의 2008년에 건립된 태백산맥 문학관 이전인 2003년에 김제의 벽골제근처에 건축되었다.
그러하니 생존작가인 조정래는 이미 2개의 문학관을 지니게 된 셈이다.
꽃 구경하러 순천에 내려와 뜻하지 않게 태백산맥을 만나 70여년이 지난 2019년에 태백산맥을
다시 생각하고 고민하고 머리아파 한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다시 시작한다.
순천만 나들이 대형 이벤트를 기획하고 성공적으로 집행,마무리 하여주신 강희회장님과 관형총무님, 효직산행대장님, 국종감사님,,, 고맙습니다.
님들의 봉사가 있기에 "우덜이 징허게 거시기 허당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