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아우를 가슴에 묻고...
사나흘 뜬눈으로 지새워 그랬는지
오늘 아침은 늦잠으로 자고 말았습니다.
마치 부랑아랄까 아니 노숙자라고 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부시시한 모습으로
바깥으로 나왔더니 부슬부슬 비가 내립니다.
마치 이 촌부의 마음을 적시듯이 말입니다.
어제는 우리 5남매의 넷째인 둘째 여동생을
저멀리 머나먼 하늘나라로 보내고 왔습니다.
보냈다기 보다는 마음속에 묻었다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고 슬픔입니다.
부모님도 보내고 지아비도 6년 전 먼저 보내더니
이제 어린 두 아들을 남겨놓고 아까운 나이에
홀연히 우리곁을 떠나버린 우리 둘째 여동생이
너무 불쌍하고 안스럽고 안타까워 마음이 아픕니다.
지난 4월 2일 오전 10시 32분,
이 촌부의 아우는 긴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57년 동안의 한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고
고통없는 저 세상을 향해 떠나고 말았습니다.
내 아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 착하게 살았는데
왜 하늘은 이런 사람을 제 명에 살지도 못하게 하고
왜 이렇게 빨리 데려가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人命은 在天이라고 했던가요?
내 아우는 어려서부터 참 착했습니다.
아마 57년을 사는 동안 남에게 싫은 소리 한번
안듣고 싫은 내색 하지않고 그렇게 살았습니다.
오로지 본인 스스로 속으로 새기면서 묵묵히 실천을
하는 그런 사람이었지요. 아마 그런 성격이라서
스트레스가 속으로 깊어져서 몹쓸 병에 들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란
것을 익히 알았을텐데 말입니다.
아우가 우리를 더 아프고 슬프게 했던 것은...
투병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죽음을 미리 예견한 듯
모든 주변을 꼼꼼히 철저하게 정리를 다 해놓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결코 그러기가 쉽지않다고들
하는데 아우는 그마저도 모두 깔끔하게 정리하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아이들 말에 의하면 떠난 후에
아무것도 하지말아 달라고 하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삼우제도, 49재도 지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오죽하면 투병 다시 소방공무원인 큰아들과 4월 6일
공무원 시험을 보려고 준비중인 작은아들에게 방해가
된다며 멀리 파주에 있는 요양원을 스스로 검색하고
찾아가 그 곳에서 지냈고 일산에 있는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했던 그런 모성애가 너무 강한 엄마였습니다.
그래서 오래비로서 더 안스럽고 슬픕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산사람은 살아야만 하고 살아가게 마련이겠지요.
아우가 남겨두고 간 두 아들은 어엿하고 어젓해
그나마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장례기간 내내 아주
일처리를 알아서 잘하는 것을 보니 든든하더군요.
내일 공무원 시험을 보는 둘째 조카가 엄마의 뜻을
받들어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기를 바랄뿐입니다.
지난 3월 23일 아우를 찾았을 때
아우가 맥없는 목소리로 그랬습니다.
"오빠! 그동안 살면서 원망도 많이 했지만
오빠가 어린 우리를 잘 키워줘서 고마웠어!"
그 말이 아우가 내게 해준 마지막 말이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좋은 말이라도 해줄 것을 겨우
"오빠 또 올께! 잘 견디고 기다리거라!"라는 말을
했을 뿐인데...
아내는 병원을 오가고 했을 때도, 장례기간 내내도
그리고 지금도 줄곧 눈물을 찔끔거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잘 해준 것도 없다면서... 그나마 지난 가을
아픈 몸으로 산골집에 왔을 때 따뜻한 밥상 차려준
것 뿐이었다며 더 잘 해줄 것을 이라며 아쉬워합니다.
아우가 그 날 그랬었죠. "오빠! 언니 잘해줘요. 우리
언니, 없는 집에 시집와서 고생 많이 했잖아?"라고...
아내가 시집왔을 때 아우는 여고생이라서 아침마다
도시락을 챙겨주곤 했었고 서로 마음이 잘 맞았던
그런 시누이와 올케 사이였지요. 정말이지 부모님을
보내드릴 때와는 달리 젊은 아우를 보내는 마음은
너무나 아프게 다가온다는 아내의 말을 공감합니다.
오래전 아버지 때도, 2년전 어머니 때도 그랬고
바로 위 언니까지 끝까지 밤낮없이 보살피느라
고생을 했던 막내 여동생이 수고를 아끼지 않은
보람도 없이 언니는 떠나가고 말았기에 멀리 사는
오래비를 대신하여 고생이 많았던 우리 막내가
가장 많이 허탈하겠지요. 장례기간 동안 앞장서서
모든 일처리를 척척해내는 것이 너무 대견스러워
슬픔속에서도 흐믓했습니다. 아우가 못다하고 간
삶을 남은 우리 형제자매가 마저 채울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아우를 멀리 떠나 보냈습니다.
그동안 긴 세월 산골에서 살면서 느끼고 체험하는
촌부의 삶을 일기형식으로 써왔던 [촌부의 단상]을
아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잠시 중단을 했습니다.
그동안 이 촌부의 마음을 위로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댓글로, 문자 메시지로,
전화로, 또한 직접 찾아와 주신 분도 계셔서 뭐라고
감사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전처럼 매일 올리지는 못하겠지만 이제 조금씩
마음을 추스리고 나면 예전에 그랬듯이 다시 소식을
전하도록 하려고 생각 중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 강원도 평창 봉평 설다목 산골에서 이용식 拜上 -
왜 이리 눈물이 나냐 빰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안경을 벗고 연신 손등으로 지워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