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햇살 좋은 날에...
이른 아침,
산골은 아직까지 겨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침에는 하얗게 내린 서리가 지붕을 덮고 있고,
땅바닥은 영하의 기온에 꽁꽁 얼어있으며, 햇볕 없는
응달쪽에는 하얗게 쌓인 눈이 녹을 줄을 모르고 있다.
산골의 겨울은 이렇게 질긴 가죽과도 같은 것인가?
아침나절,
동녘에 고개를 내미는 햇살이 참 좋다. 지붕위에 내려
앉은 서리가 녹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말
경이로운 햇살의 힘이다. 땅바닥의 서릿발은 녹을 줄
모르고 아직 서걱서걱이다. 문득 패다 남겨둔 장작을
좀 패 볼까 했더니 아내가 말린다. 쉴 때는 좀 쉬라고...
조금 후에 햇살이 퍼지면 땅바닥이 질퍽거리게 될테니
땅바닥 딱딱할 때 해보려던 것인데 타박을 하네 그려~
그래, 영감 생각하는 할멈의 배려하는 마음일테니까
군소리 말고 그저 따르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테지?
점심 무렵,
모처럼 원주에서 가족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장모님
모시고 아내와 함께 산골집을 나섰다. 산골집을 나설
무렵 기온은 영하 1도였지만 햇살이 좋아서 얼어있던
땅바닥도, 쌓였던 눈도 녹아서 질퍽거렸다. 이제 봄이
오긴 오는가 싶다. 자동차로 40여분을 달려서 도착한
원주는 이미 봄이 당도한 느낌이 들 정도로 따뜻했다.
두꺼운 겨울 외투를 입은 우리의 모습은 마치 이방인
모습처럼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지난 설 명절에 모두
바빠서 산골집에서 모이지 못했는데 다음주 장모님과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미리 가족 식사를 한 것이다.
아내는 복이 많은 것인지 아님 복이 없는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음력으로 지내는 생일이 장모님과 같은 날,
그러니까 장모님께서 당신 생일에 큰딸을 낳은 것이다.
처남네, 처제들과 조카들을 만나 장모님의 86회 생신,
아내의 63회 생일 축하를 하였다. 모처럼 흩어져 사는
산골 식구들이 한 자리에 다 모여 이야기 꽃도 피우며
식사를 하여 마음이 흐믓하고 뿌듯했다. 교사 2년차인
조카 딸내미도 이제 어엿한 숙녀가 되어서 외할머니와
큰 이모에게 생일 선물을 챙겨 주었다. 아내가 하는 말,
"너무 감격스러워 눈물 날 뻔 하는 걸 참느라 혼났어!"
라고 했다. 하기사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녀석이 훌쩍
자라서 다 큰 숙녀가 되었으니 그럴만도 했을 것이다.
이런 자리를 자주 가졌으면 좋겠지만 바쁘게 살아가는
세상이라 그럴 수가 없음이 많이 아쉽다. 또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모두 각자의 삶터로 향했다.
저녁무렵,
맛있는 식사에 좋은 선물 받은 장모님과 아내와 함께
오는 길, 대형마트에 들려 잠시 쇼핑을 하고 집에 왔다.
어느새 해는 서산으로 저물어 땅거미가 지고 있었다.
마치 봄날 같았던 원주와는 다르게 산골의 저녁무렵은
겨울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곧바로 난롯불을 지폈다.
아마도 지금 이 산골은 아침.저녁으론 겨울인 듯하고,
한낮엔 봄인 듯하여 두 계절이 함께 공존하는 듯하다.
남녘에서는 봄꽃 소식이 들려오고 있지만 질긴 산골의
겨울은 언제쯤이나 떠나가고 봄이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