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촌부의 단상

IMG_20190212_4.jpg : 촌부의 단상-꺽다리 자작나무의 추억IMG_20190212_3.jpg : 촌부의 단상-꺽다리 자작나무의 추억IMG_20190212_2.jpg : 촌부의 단상-꺽다리 자작나무의 추억IMG_20190212_1.jpg : 촌부의 단상-꺽다리 자작나무의 추억[촌부의 단상]
꺽다리 자작나무의 추억

나무를 태우면 자작자작 소리가 난다 하여 붙은 이름,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지었는지 잘 모르지만 이름도
참 재미있게 지었구나 싶은 나무가 바로 자작나무이다.
이 녀석들은 번식력도 좋은 것으로 알고 있다. 나무의 
높이가 5m 이상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씨는
날개가 달려 아주 가벼워서 멀리 날아갈 수 있어 햇볕
잘 받는 공간에 떨어지기만 하면 곧 발아하여 주변은
자작나무 숲을 만든다고 한다. 꽃말도 아주 재미있다.
"당신을 기다립니다"라고 하는데 아마도 키가 커다란
자작나무가 우뚝 서서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듯하여
그렇게 꽃말을 만든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작나무의
껍질로 연인에게 연서(戀書)를 썼다고 하는 낭만적인
사연을 간직한 나무라서 그런 것일까?

우리 단지에도 지금 몇 그루 자작나무가 우뚝 서있다.
우리가 이곳에 오던 이듬해 세동서가 함께 심을 무렵
아주 작은 나무였으니까 아마도 지금은 수령(樹齡)이
18년 아니면 19년은 될 것이다. 이제는 엄청 높다란
나무가 되었고 밑둥의 둘레도 상당하다. 조금 아쉬운
것은 그 당시에 열 두세 그루를 작은 밭가 길 양쪽에
심어 우리는 자작나무길이라고 부르곤 했는데 몇 해
전에 두 그루만 남겨놓고 모두 잘라내고 말았다. 워낙
큰 키에 나뭇가지와 잎이 무성하여 밭에 나무그늘이
져서 농사에 큰 지장을 초래한다는 핑계로 두 그루만
남겨두고 모두 베어 버렸다. 겨우 채소농사 조금 심는
주제에 오랜 추억이 서려있는 멋자 자작나무를 베어
버려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낭만보다도
현실적인 것에 더 치중하여야 하는 것이 핑계같지만
산골살이에서는 더 먼저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남아있는 자작나무는 이제 엄청 자라서 성목(成木)이
되었고 우리 단지 대표적인 조경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을분들이 우리 단지에 오면 커다랗게 자란
꺽다리 자작나무를 보며 초봄에 수액을 뽑아 먹어도
될 정도라며 고로쇠 나무수액을 뽑아 먹듯이 해보라
권한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해보지도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꽤 오래전 뒷산에 올라가 고로쇠 수액을
채취해 본 적은 있지만 그 이후 더 이상 한번도 하지
않았다. 마치 사람으로 치면 피를 뽑는 것처럼 나무의
양분을 뽑는 것이라 나무에게 몹쓸 짓을 하는 것 같고
죄를 짓는 것 같아 그럴 생각은 지금도 없다. 하얗게
껍질이 벗겨지고 특이한 색깔을 가진 자작나무를 그저
곁에 두고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하였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하늘을 향해 위로 위로 더 높이 자라고 있는
자작나무는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시원한 느낌이
드는 아주 좋은 나무이고 아우들과의 추억이 서려있는
그런 나무이니까...

오늘 아침은 어제보다는 기온이 떨어졌다. 영하 14도,
꺽다리 자작나무가 추위에 오들오들 떨고 서있는 그런
아침을 맞는다. 어제는 아내가 돼지갈비를 묵은지에다
돌돌말아 자작하게 육수를 부어 고기와 묵은지가 아주
부드러울 정도로 푹 끓인 묵은지 갈비찜으로 배부르게
먹었다. 아내의 정성까지 먹었다고나 할까? 야식까지
먹을 여지가 없었는데 뒤늦게 아내가 곶감을 챙겨와서
무려 다섯 개나 먹고 말았다. 아내 친구의 사돈댁에서
만든 영동 곶감인데 달달하고 말랑말랑한 것이 너무나
맛이 좋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곶감을 그렇게나 많이
먹고 또 먹었으니 해우소에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어라? 바깥에는 예보에도 없던 눈발이 흩날리고 있네!
장모님 모시고 읍내 나가기로 했는데... 괜찮을까?
Atachment
첨부 '4'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