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마중 나온 아내
가을걷이가 끝나고 눈이 살포시 내려앉은 황량한 논,
좀처럼 봉평 산골 우리 마을에서는 구경할 수도 없는
텅 빈 논바닥을 봉화 성님댁 바로 옆에서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텅 빈 것이 아니다. 논에 남아있는
볏짚 밑둥과 그 위에 하얗게 내린 눈이 소복하게 쌓여
있으니 한가득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았다. 논에는
벼를 베고 남은 볏짚 밑둥이 가지런하게 남아 겨울을
맞이하고 있다. 정겨웠다. 옛 생각이 났다. 한번 들어
가볼까? 신발을 신었지만 푹신푹신한 촉감이 몸으로
전해지고 느껴지는 듯했다. 그뿐이 아니다. 서걱서걱
소리로 들리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 옛날 어릴 적
사립문을 나서기만 하면 바로 작은 할머님댁 논이라
이맘땐 놀이터겸 운동장이 되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겨우내 머슴아들은 자치기를 비롯하여 온갖 놀이란
놀이는 다했고 계집아이들을 고무줄 놀이를 하였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이면 볏짚 밑둥은 온데간데 없고
맨질맨질한 운동장이 되어버린 논이었던 그 추억속
한 장면이 떠올랐으니 이번 봉화 여행은 짧긴 했지만
인연 쌓기와 더불어 옛 추억을 소환하는 너무나 좋은
여행이 되어 흐믓하다. 봉화 성님 부부와 여수에서 먼
길을 한걸음에 달려오셨고, 청주에서 대구에서 달려
오신 분들께 감사함을 전한다.
짧았지만 즐거웠던 만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백미러로 보니 성님은 우리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동안 서 계셨다. 창문열고
손을 흔들었다. 성님도 여운이 남은 듯이 손을 흔들며
우리들을 배웅하셨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성님께
감사함을 함께 그렇게 전했다. 봉화읍내를 거쳐 풍기
IC를 통해 중앙고속도로를 들어서 달려 원주를 거쳐
영동고속도로를 달렸다. 꾸불꾸불한 소사 고갯길을
지날 무렵 아내가 전화를 했다. "공과금 낼 것이 있어
봉평에 나갔다 와야 하는데 도착할 무렵 연락주셔!
우리 길은 치웠는데 아랫쪽 길이 어떤지 모르겠네?"
라고 하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집에 오르는 진입로에
도착했더니 눈을 치우지않아 자동차가 올라갈 수가
없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랫쪽은 눈을 안치워
길이 얼어붙어 올라갈 수가 없겠네. 당신이 걸어내려
오시게! 조심하고..." 혼자 중얼거렸다. "도대체 무슨
깡으로 눈을 치우지도 않고 저렇게 놔둔채 다닐까?"
예전에는 꼭데기 사는 죄로 매번 치우곤 했으나 이젠
자동차를 두고 걸어다니더라도 치우고 싶지가 않다.
그 사람들과 같은 심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괘씸한
생각에 더 이상 쓸데없는 봉사는 하고 싶지가 않지만
저만치 아내가 미끄러운 비탈길을 조심조심 걸어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마중나온 듯한 느낌이 들면서 한편
"저런 고생을 시키지 않으려면 힘들어도 길을 치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아랫쪽 서울에서 내려와
전원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눈을 치우겠지?"
하는 기대 아닌 기대를 해보며...
겨울다운 산골의 이른 아침이다. 꽤 춥다. 매우 춥다.
봉평 영하 19도, 산골집은 영하 21도... 이제 제대로
겨울속으로 빠져든 느낌이다. 이렇게 기온이 떨어진
날씨라지만 우리 몸은 이를 견디고 이겨내는 탁월한
적응력을 가지고 있음이라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겨울은 여느해 겨울에 비해 무척 춥다고 하였는데
몸도 마음도 단단히 무장을 해야겠구나 싶다. 하기사
추위는 첫추위가 힘들지 내성이 생기고 적응이 되어
되는 것이라서 그렇게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추위는
여기 산골에서 살며 이겨내고 적응해야만 하는 것이
촌부에게 주어진 숙명같은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