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그 옛날 주(酒)태백이었던 기억
12월이 시작되었다. 딱히 뚜렷한 이유도 없는데 그냥
마음이 바쁘다. 시간이 빨리 흐르고 세월이 속절없이
쏜살처럼 지나가는 느낌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싶다.
옛날처럼 연말 분위기에 젖어 이런저런 핑계을 들어
이곳저곳 송년회를 쫓아다니는 것도 이제는 머나먼
지나간 날들의 추억으로 기억속에 남아있을 뿐이다.
그땐 정말 너무 정신없이 연말연시를 보내곤 했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때였는지라 거래처에 자필로 내용을
쓴 연하장을 보내느라 일과 시간 이후에 남아서 일을
했고 카렌다와 달력도 챙겨 보내곤 했었다. 허구한 날
거래처 접대, 직원들과 회식, 각종 모임 송년회 참석,
친구들과의 만남 등으로 연일 바쁘게 지냈던 기억이
새롭다. 그만큼 대인관계의 유지를 위해서 정신없이
지내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니 몸도 몸이지만
비용도 만만찮게 들었다. 업무상으로 나가는 자리는
당연히 회사에서 비용처리를 해주었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는 모임의 비용이 꽤나 많이 지출되었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어떤 때는 쉬는 날 휴일에도 불려나가야
했을 정도였으니... 그때 아내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12월 한 달은 아예 집에 들어올 생각일랑 말고 술과
함께 나가 사는 것은 어떠실런지?"라며 걱정했었다.
그럴만도 했다. 젊은 시절 어느 해 연말연시엔 37일
연주(連酒)라는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아주
어리석고 좋지않은 기록이랄까, 창피한 경험이랄까?
생각하고 싶지않은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 놈의
체면치레가 무엇이라고, 그렇게 해야 먹고 사는 줄만
알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술 대접이 모든 일의
성사를 이루는 열쇠처럼 여겨졌던 시대가 낳은 몹쓸
병폐였던 것이 이런 어처구니없는 기록을 남겼다.
그래도 아내는 묵묵히 이런 남편 건강을 위해 옆에서
이것저것 챙겨 먹이며 지켜주었다. 아침마다 녹즙을
챙겨 먹이고 연일 해장국을 끓이느라 황태며 북어는
늘 준비되어 있었다. 먹고 살기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핑계 아닌 핑계로 아내는 물론 나 자신에게
참으로 못할 짓을 많이 했었다. 당시 아내의 보살핌이
없었다면 큰 일이 났을 것이다. 그래서 더 고맙고 더
아껴주어야 하는 사람이 아내인데 무뚝뚝한 경상도
사람이라 그저 마음뿐이다. 요즘은 아내의 뜻에 따라
술을 마시더라도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집에서 술을
마시게 되면 석자을 정량으로 정해놓고 가끔 마신다.
그 옛날에는 뭐가 좋다고 그렇게 퍼 마셨을까? 이제는
이 산골의 고즈넉한 정취를 느끼며 아내와 함께 이런
저런 옛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며 한두 잔쯤 즐기는
식으로 술을 마시는 촌부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