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촌부의 단상]별장지기 영감, 할멈이 되었네!
얼마전 단지내 꽃이 자라는 곳에는 모두 마른 꽃대를
잘랐다. 넓은 정원은 예초기로, 예초기로 자르기 힘든
곳은 낫으로 베어냈다. 또 비탈진 언덕배기 더덕밭에
원하지 않은 크고 작은 잡목도 엔진톱으로 베어내고
낫으로 모두 정리를 했다. 그런데 둘째네 집앞 축대는
마른 꽃대보다 잡목이 잘 자라는지 모르겠다. 수형이
좋거나 꽃이 피는 나무라면 그냥 그대로 두어도 좋을
텐데 그렇지도 않은 말 그대로 잡목들이라서 보기가
싫다. 비스듬하게 비탈진 축대라 엔진톱을 들이대는
것도 위험해 작업을 조금 미뤄두었는데 지나다니며
늘 보게 되는 것이라서 촌부 마음이 영 좋지않았다.
큰 작업도 아닌데 이대로 방치하여 남겨둔다는 것은
촌부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작업복으로 갈아
입고 낫을 들었더니 아내가 하는 말, "아직도 낫들고
해야 하는 일이 남았는가베? 이제 좀 쉴 땐 쉬시지?"
"둘째네 집앞 축대 꽃대와 잡목을 좀 잡을까 하고..."
"영락없는 별장지기 영감이네!ㅎㅎ"
"그럼 당신은 별장지기 할멈이겠네?ㅋㅋ"
맞다! 아우들은 산골집을 떠나 아주 가끔씩 찾아오니
이미 각자의 집은 별장이 되었고 단지를 관리하면서
집을 보살피는 우리 부부는 별장지기 영감, 할멈이다.
"혼자 해도 되겠수? 환상의 복식조가 나서야..."
"됐네! 이 사람아! 이 일 만큼은 복식조가 필요 없어!"
"그럼 운동이나 할라니까 필요하면 부르셔!"
"부를 일 없을테니 부지런히 걷는 운동이나 하시게!"
낫을 들고 마른 꽃대와 잡목을 베다보니 지난번 내린
눈이 덜 녹은 상태로 그대로 얼어있어 조금 미끄러워
조심을 해야했다. 도대체 심지도 않았는데 이렇게도
잡목들이 무성하게 자라는지 알 수가 없다. 지난해도
그랬지만 올해는 더 많이 더 무성한 것 같다. 동서가
심어놓은 진달래 세 그루와 단풍나무 그리고 몇 그루
동서가 심어놓은 나무, 다람쥐 아니면 청설모가 숨겨
놓고 잊어버려 싹이 트고 저절로 자란 잣나무 한 그루
그리고 명자나무를 제외한 나머지 잡목은 모두 잘라
버렸다. 그 중 처제의 집에서 부르는 이름인 '명자'와
이름이 같다고 하여 여기서 살던 어느해 동서가 체제
생일을 기념하여 선물로 심어놓은 명자나무가 멋대로
자라있는 것을 보니 옛 생각이 나서 먼 하늘을 보았다.
함께 살던 그때를 떠올리게 된다. 생각 많은 촌부라서
그런 것인지, 자화자찬이라고 흉을 볼 수도 있겠지만
남달리 정이 많은 촌부라서 그런지 모르지만 요즘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우들과 함께 했던 지난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를 그리워 하게 된다. 외로워서 그런가?
깔끔하게 정리해 놓은 둘째네 집앞 축대를 바라보며
혼자 미소를 지었다. "별장지기 영감 참 잘했네!"
저녁에 별장지기 할멈인 아내가 "오늘 둘째네 집단장
하느라 수고했는데 뭘 해줄까?"라고 했다. 아주 잠깐
생각 끝에 "뭐 얼큰한 것 없나? 매콤한 게 먹고싶네!"
라고 했더니 "쪼매 기다려 보소!"하더니 조금 있다가
"다 되었으니 어서 와 보시오!"라고 하였다. 아일랜드
식탁 위에 얼큰 칼국수가 한 그릇이 올라왔다. 날씨에
참 잘 어울리는 야식이다. 차돌배기를 쫑쫑 다져넣고
만들어 놓은 산골 아낙표 만능 양념장을 넣고서 끓인
얼큰 칼국수를 몇 젓가락 흡입한 후에 국물을 후루룩
몇 모금 마시니 금새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놈 촌부는 산골 아낙의 음식에 심하게 중독되었다.
너무나 고마운 마음인데 촌부도 그냥 있을 수가 없다.
후식을 겸해 도라지 가루와 벌꿀을 버무려 놓은 것을
반 스푼, 생강청 반 스푼을 유리컵에 넣고 펄펄 끓는
물을 조금 부어 잣을 동동 띄워 뜨끈하게 한잔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별장지기 영감, 할멈의 호사스런
야식이었다. 훗날 처제와 동서에게는 오늘의 이 맛난
산골 아낙표 보다 더 맛있는 걸 얻어 먹어야 하는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달력을 넘겼다. 어느새 12월...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을 넘기다 보니 세월의 빠름이
느껴진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오늘처럼 12월이
오면, 연말이 다가오면 그저 마음이 바빠지는 느낌에
사라잡히게 되는 것 같다. 기쁨보다 걱정이 앞선다고
할까? 본격적인 겨울에 접어드는 시기라서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열여덟 번의 겨울도 이겨냈는데 뭘 그리
걱정이냐며 애써 마음을 다둑거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