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촌부의 단상]주례(主禮) 서 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며칠전 절친한 친구가 내년 초에 아들 결혼식을 올릴
예정인데 촌부더러 주례를 서주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았다. 친구는 생각끝에 제의를 했겠지만 갑작스레
그 말을 듣는 순간 촌부는 그만 놀라고 말았다.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정중히 사양을 했다. 부탁한 친구에게
많이 미안했지만 느닷없는 제의에 당황했던 것이다.
옛부터 혼인의식 주례(主禮)는 일생 한번뿐인 신성한
혼인식을 진행하는 사람이라서 새로운 가정을 꾸리는
두 젊은이 앞날을 위해 잘 선택해야 한다고 알고 있다.
혼인의식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가정생활이 원만하고
또한 덕망이 높아 신랑.신부가 존경할만한 모범적인
사람을 선택하여 모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촌부는 그럴만한 인물이나 그릇이 못되는지라
거절을 한 것이다. 그동안 많은 결혼식을 다녀보았다.
사회자와 함께 혼인의식을 진행하는 것을 보면 주로
주례는 신랑.신부 또는 양가 부모와 인연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정치인이나 사회 지도층 인사들,
종교단체 성직자, 은사님, 직장의 상사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요즘의 결혼식 풍속도는
이색적인 형태가 많이 등장한다. 아예 주례가 없거나
양가 아버지가 나와 주례를 겸하는 경우도 보게 된다.
어떤 모습이라도 혼인의식인 결혼식의 주례는 함부로
서서는 안된다는 촌부의 생각이라서 정중히 사양했다.
굳이 못할 건 없다.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그렇게 큰
과오를 저지른 삶이 아니라면 그걸 토대로 주례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 가정을 꾸리는 젊은이를
위해 과연 모범적인 삶을 살았는가를 생각해보았다.
나름의 삶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왔지만 결코 지금껏
삶이 그렇게 순탄하지만은 않았기에 그다지 모범적인
것은 아니었다는 결론이라서 사양을 했던 것이다.
문득 주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그 옛날 38년의
세월이 흐른 촌부의 결혼 주례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
난다. 당시 촌부의 아버지께서는 고향 출신 국회의원
한 분을 주례로 모시면 어쩌냐고 하셨다. 그러나 그때
촌부는 주례는 알아서 할테니 맡겨주십사라고 말씀을
드렸다. 솔직히 말을 하자면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정치는 물론 정치인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거의 불신
그 이상에 가까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성격인데
정치인을 결혼식 주례로 모실 수가 있겠는가? 촌부의
개인적인 성향인 것이니까 혹시 이 글을 정치인이나
정치와 관련된 분들이 보시게 된다면 오해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욕을 하거나 비난해도 상관없지만...
그래서 부탁을 드린 분이 학교 은사님이신 故 안장현
선생님이셨다. 학교에서 그 분 수업을 듣고 배우지는
않았다. 선생님은 야간 국어 담당이셨고 촌부는 주간
학생이라 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선생님과의 만남은
시내버스에서 자주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자연스레
가까워졌다. 당시 교사이시면서 시인으로 한글문학회
회장을 맡아 계셨다. 선생님이 쓰신 시집과 수필집은
물론 유명한 문인들의 작품을 주시면서 글을 쓰려면
많이 읽어야 하고 그 글 속에는 거짓없는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자주 해주셨다. 그런 인연으로
재학시절은 물론 사회에 나와서도 몇 년을 선생님께
사사를 받으며 한글문학회 활동을 했다. 결혼을 앞둔
그 무렵 주례를 모시는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선생님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배우자가 될 아내와 함께
우리집이 있던 세검정 부암동에서 자하문 고개 넘어
선생님께서 사시는 청운아파트를 찾았다. 이 사람과
결혼을 할 예정인데 선생님께서 주례를 서 주셨으면
한다고 말씀 드렸더니 애제자가 결혼을 하는데 어이
마다 하겠느냐시며 흔쾌히 승낙을 해주셨다. 지금은
하늘 나라에 계시지만 늘 우리 부부의 삶을 지켜보고
계시리라 생각된다. 선생님께서 바라시던 문학인이
되긴 했지만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라 주례를 부탁한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할 뿐이다.